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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이인제, 그 파란만장한 정치인생
15년만의 친정 복귀, 노동개혁 총대 메고 ‘신박’으로 거듭나나
입력 : 2015-08-24 오전 10:31:59
이인제 최고위원은 1948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노동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인연을 맺어 통일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들어선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등원한 그는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과 함께 만 44세 최연소 노동부 장관에 기용돼 고용보험제도 도입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95년에는 첫 민선 경기지사로 선출돼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 최고위원의 정치인생 분기점은 1997년 15대 대선출마가 꼽힌다. 그는 당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YS등 주위의 만류에도 경선에 불복해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다.
 
대선 결과는 김대중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였고, 그가 얻은 500만표 중 260만표가 영남에서 나왔다. 보수분열로 여야 정권교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2002년 대선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풍’에 밀려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2007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불과 0.7%의 지지 획득에 그쳤다.
 
또한 이 최고위원은 자의반 타의반 잦은 당적변경을 통해 6선의 정치생명을 이어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국민신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민주당→통합민주당→무소속→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새누리당으로 무려 13개의 당적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 시점에서 마지막 당적변경은 2012년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의 합당이다. 그는 “정치를 처음 시작한 어머니의 당으로 합류돼 기쁘다”면서 “공자가 모국을 떠나서 열 몇 나라를 돌아다니다 14년 만에 돌아왔다는데, 제가 15년 만에 돌아왔다”고 감회를 밝혔다.
 
복귀 후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박근혜)핵심’ 홍문종 의원을 따돌리고 최고위원에 당선, 당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신 친박’으로 분류되며 새누리당 노동선진화특위위원장직을 맡아 노동개혁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 최고위원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윈스턴 처칠의 ‘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in)다.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 특위 경영계 간담회에서 이인제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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