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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수출 70년, 중국이 최대 교역국 됐다
광복 직후 교역액 6400만 달러에서 1조 달러까지 성장
입력 : 2015-08-12 오후 7:43:28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변화를 겪어왔다. 광복 후 황무지나 다를 것 없던 한국은 이제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을 선진국의 대열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은 바로 수출이었다.
 
◇전쟁 딛고 '아시아 4마리 용'으로…이제는 세계 무역 대국
 
광복의 기쁨으로 가득했던 1946년 한국의 무역액은 6400만달러였다.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며 원조에 의존했던 1950년대, 정부는 수출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쌀과 김, 한천과 면직물 등 1차 생산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1962년 드디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다. '수출주도형 경제 발전'을 내건 정부의 전략에 따라 이후 무역액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1964년 수출이 1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를 기념해 11월30일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다. 당시 수출은 1억1905만달러였고, 수입은 4억6344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입이 수출의 3배에 달했다.
 
1960년대 세계 경제 호황기의 분위기를 타고 우리 수출은 10여년 동안 연평균 41%라는 유례 없는 성장을 이뤘다.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산업의 중심은 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기계와 선박, 철강 등의 중화학 제품이 수출의 40~50%를 차지했고, 삼성과 LG, SK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당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성장을 시작했다. 수출 1억달러에서 10여년이 지난 1977년, 수출액이 100억달러를 넘어선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기술집약적인 제품들이 수출 주력상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컬러TV와 컴퓨터, 반도체 등이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했고, 광복 이후 이어지던 무역수지 적자가 1986년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당시 수출은 347억1447만달러, 수입은 315억8390만달러로 31억57만달러의 흑자를 남겼다.
 
1990년대 수출품 1위는 반도체였다. 우리 기술력으로 만든 CDMA 휴대폰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 조선 산업은 세계 1위의 수주율을 자랑했다. 1995년 한국의 수출액은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이듬해인 1996년 이른바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에 이른다.
 
2000년대에는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고기술 품목들이 수출에서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인공위성과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이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잡았고, 한류를 통한 대중문화도 수출되기에 이른다.
 
2011년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액 1조달러를 돌파한다. 당시 1조 클럽 국가들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고 중국이었다. 한국이 무역액 1000억달러에서 1조달러까지 성장하는데 걸린 시간은 23년. 프랑스가 31년, 이탈리아와 일본, 네덜란드는 무려 30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였다.
 
홍석우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근로자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무역 1조달러는 분명 국민적 자긍심을 갖게 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창 급성장을 이루던 시기 '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에 하나였던 한국은 이제 세계 무역규모 8위라는 대국으로 성장했고, 1조달러 달성으로 세계 무역의 흐름을 주도하는 국가로 자리잡았다.
 
◇교역국 무게중심 미·일에서 중국으로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수출은 5727억달러로 세계 6위 수출국이 됐다. 지난 1956년 2500만달러에 불과하던 한국의 수출은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수출 총액의 3.1%를 차지하는 수출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수출의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국 시장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양국의 교역액은 63억7000만달러였다. 강력한 수출 정책을 통해 규모를 키워가던 한국의 주요 교역국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1992년 한국의 수출 비중은 미국이 23.6%, 일본이 15.1%로 두 나라가 한국 수출액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교 이후 점차 중국과의 교역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의 급성장과 맞물려 무서운 기세로 증가하다가 2003년에 이르러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 중국으로의 수출은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1년 후인 2011년에는 교역 규모가 2000억 달러를 돌파한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수교 이후 매년 두 자리수 이상의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 수출의 25%, 1452억 달러의 수출이 중국을 통해 이뤄졌다.
 
미국의 저성장과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에도 급성장하는 중국과의 교역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한국 수출은 멈추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역 1조 달러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시장의 확대와 맞닿아 있다.
 
◇무역액 1조달러 '흔들'…수출품 다변화·내수 활성화 숙제
 
한국의 경제 성장이 무역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무역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 수출이라는 사실에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이 빈약한 한국으로서는 수출 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었고, 이는 정부의 강력한 수출 지원정책으로 이어졌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비롯해 역대 정부는 항상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성장 정책을 일관되게 제시해왔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 정책 역시 매우 강력했다. 매년 막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이 투입됐고, 그 결과로 IT와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 분야에 있어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기술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첨단 기술 집약 제품의 수출로 이어졌다.
 
하지만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무역이 이제는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무역의존도가 원인이다.
 
1956년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15.2%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무역의존도는 무려 99.5%까지 치솟았다. 한국 경제는 무역으로 움직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글로벌 경제 동향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위기설이 터질 때마다 한국이 휘청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1년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이후 더 이상 성장이 멈춘 것도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이 영향으로 한국의 경제가 덩달아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올해 1조 달성이 불투명한 것도 세계 교역이 둔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올해 들어 수출이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상반기 무역 규모가 4913억달러에 불과하다"며 "세계 경기 둔화와 저유가, 엔저, 유로화 약세 등 구조적인 요인들로 무역 1조달러 달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큰 교역국인 중국마저 성장률이 둔화되고, 자국 경기부양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나친 중국 수출 의존에 따라 중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리는 꼴이 됐다.
 
전문가들은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정책 지원과 신성장동력 발굴 등이 병행되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중국 수출의 경우 상품을 세분화 할 필요가 있고 아울러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내수 중심의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보완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화장품, 소형 가전제품 등 중국 소비자가 자국 제품에 불신을 갖고 있는 생활소비재 분야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며 "기존 주력 품목도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제품군 자체를 다양화해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가 지난달 9일 발표한 수출경쟁력 강화 대책에도 이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윤상직 장관은 "최근 부진한 수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주력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중소·중견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제조업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
 
1957년 수출용 미곡 인수 사진(왼쪽 위)과 1964년 열린 제1회 무역의 날 행사(오른쪽 위). 1972년 국가 수출단지의 가발공장 전경(왼쪽 아래과 2012년 무역1조 달러 달성 기념식(오른쪽 아래). 사진/국가기록원·뉴시스.
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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