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째 한국을 방문 중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국 연방대법관은 5일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법원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이끈 긴즈버그 대법관은 당시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해 "사회와 다른 법원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으로 합의가 어렵지 않았다"고 답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과거 동성 결혼 자체가 불법인 때가 있었고 이후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으며, 동성애가 주거·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금지 조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는 등 동성애 관련 문제는 여러 단계를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오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사이에 각 주의 입법 과정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여러 법원을 거치면서 국민의 태도도 바뀌었다"며 "미국 대다수의 국민은 동성 결혼에 동의하고 있고 메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다른 법원에서 좋은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연방대법원도 그런 결정을 하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과거 여성에게 불평등했던 미국 사회의 모습과 제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하버드 재학시절 로스쿨 건물은 2개인데 여자화장실은 한 건물에만 있어서 난감할 때가 있었지만 당시 누구도 불평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것이 당시 사회의 모습이었다"면서 "1960년대에 남성이 육아에 동참해야한다는 등 변화를 꾀하기엔 미국에서 시기상조였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법관들의 생각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워싱턴 D.C 순회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가느냐'고 물었지만 사실 남편이 저를 위해 뉴욕에서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조지타운대 교수 자리로 옮겼다"면서 "당시엔 여자가 남자의 직업을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남편이 아내의 직장을 따라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과거 여성은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없고, 망인의 유산집행인으로 남녀 모두가 신청할 경우 남성을 우선 선택하도록 했으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다고 언급했다.
'이상적인 대법원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는 "스웨덴에서는 경찰이 용의자를 48시간 동안 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는 경찰이 인종차별 없이 그런 판단을 하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체포영장이 있어야한다"며 "어느 한 사회의 이상적인 시스템이 다른 사회에서는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 법조인들에게는 "끈기와 유머감각을 가지고, 아니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말라. 그래도 계속 두드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 "로스쿨 재학시절 오전 8시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4시에 돌아와서 14개월 딸 아이를 돌본 뒤 아이가 잠들면 다시 공부를 했다. 공부가 힘들면 육아를 통해 잠시 머리를 식히고 육아가 힘들면 공부로 휴식했다"고 말해 좌중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강연회는 한국의 법관, 변호사, 사법연수원·로스쿨생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소영 대법관과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이정환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사회를 맡았다.
'지혜의 아홉 기둥'으로 불리는 연방 대법관 9명 중 긴즈버그 대법관은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22년째 대법관으로 재직중이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지난 2013년 직접 동성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했다.
한편 긴즈법원 대법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양국의 헌법재판제도와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결정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접견실에서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화 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