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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찌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젠 당당해지고 싶다"
10여 년의 아픔 딛고 일어서는 조정현·조아라 부녀
입력 : 2015-08-0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1980년 TBC 방송국의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데뷔했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세상이 어수선해진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괄시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1981년 문화방송으로 옮겨 쟁쟁한 선후배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고,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독불장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때 참 열심히 살았다"고 회고하는 이 남자는 바로 코미디언 조정현씨(58)다.
 
1999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후배가 싸우다 파출소에 끌려갔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가 쓰러졌다. 근본적으로는 과로가 원인이었다. 오른쪽 수족마비와 언어장애가 뒤따랐다. 몸은 많이 회복되었고 22년 전 뷔페 사업으로 시작한 웨딩홀 사업을 계속 영위하고 있지만 방송에 미련이 없을 리 없다. 방송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집에는 방송하던 시절의 사진들이 이곳저곳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그동안의 오랜 침묵을 뒤로 하고 조정현이 돌아온다. 아쉽지만 방송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우선 무대부터다. 직접 무대에 출연하지는 않는다. 한 예술인의 뮤즈로서 영상을 통해 무대에 간접적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과거의 상처 속에서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조정현을 대중 앞으로 끌어낸 것은 바로 소리꾼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조정현씨의 딸 조아라(35)다. '싸이코 무녀 조아라의 멀티 인터랙티브(multi-interactive) 굿놀이 <어쩔 수가 없어>'라는 긴 제목의 공연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이달 29일부터 9월 6일까지 올리게 된 부녀를 1일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함께 만났다. 
 
조정현·조아라 부녀 (사진=김나볏 기자)
 
-먼저 조정현씨 근황이 궁금하다. 현재 정현탑웨딩홀시티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업 외에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조정현) 타짜다(웃음). 친목회 사람들하고 부부 동반으로 일주일에 한번 우리 집에서 모인다.
 
-그러고보니 이 테이블과 의자가 범상치 않다. 어디서 본 듯도 한데.
 
(조정현) 웨딩홀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고 있다(웃음).
 
-이번 작업의 제목이 <어쩔 수가 없어>다. 코미디언 조정현이 히트시킨 유행어인데. 어떻게 이 제목을 달게 됐나.
 
(조아라) 내가 정했다. '몸소리말조아라'라는 단체에서 매해 한 작품씩 올리고 있는데 지난해 갑자기 내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더 진솔한, 내가 가지고 있는 색깔을 꺼내야 변별력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전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는데 이제 그 고민의 결과를 이야기할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무의식 중에 ‘어쩔 수가 없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근데 '어쩔 수가 없어'는 내 기억 저 밑에 묻어뒀던 아버지의 유행어라는 생각이 났고, 결국 내 삶이란 것도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비가 공존하고 있는 내 삶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 싶었다. 내가 내 트라우마나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 자유롭게 무대에 서겠는가.
 
-이런 취지에 아버지도 동의했는지.
 
(조아라) 아빠도 코미디언이었으니까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잘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고 했을 때 '왜 굳이 어려운 얘기를 꺼내느냐, 밝고 좋은 얘기만 해도 되는데'라고 하셨다. 나는 '이것이 분명한 가치가 있을 거다, 진솔한 뭔가가 발견될 것이다' 라고 설득했다. 사실은 아빠를 새롭게 다시 만나고 싶어서 시작한 작업이기도 하다.
 
(조정현) 처음에는 희극인 줄 알았다. 근데 알고보니 인생을 짚어내는 공연이어서 그게 싫었기 때문에 반대했다.
 
조정현씨의 가족 사진과 젊은 시절의 사진이 놓여 있는 공간(사진=김나볏 기자)
 
-처음에 반대했더라도 나중에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조정현) 딸이 기획하고 연출하고 제작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내 자식이지만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나를 모티프로 삼는다고 했을 때 반대도 했고 짜증도 냈지만 지금은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기대된다. 아라는 그걸 깨부셔야만 새로운 아라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거고…지금은 많이 이해를 하고 있다.
 
-조정현씨가 무대에 직접 출연하는 게 아니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등장한다. 준비는 어떻게 진행됐나.
 
(조아라) 160개 정도의 비디오 자료를 포함해 아버지가 젊었을 때의 자료를 다 봤다. 그 자료가 영상 속에 등장한다. 기사들도 스크랩해 두신 게 13권 정도 되더라. 사실은 굉장히 놀랐다. 마치 내가 35살이 됐을 때 <어쩔 수가 없어>라는 작업을 하라고 이 자료를 모아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내가 커나가는 동안에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몇 번 없다.
 
(조정현) 한번도 없다.
 
(조아라) 그래서 그 자료를 보고 '아, 아빠가 젊었을 때 이렇게 살았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조정현) 참 열심히 살았다. 광주에서 지금의 부인과 같이 서울로 올라와서 TBC 개그콘서트에 응모하고 동상을 받았다. 그리고 단칸방에서 아라를 낳았다. 힘든 시절이었다. 당시 전라도 사람들은 사업적으로나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무시 당하기 일쑤였고.
 
-이번 작품에 가족들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 같은데. 조금 소개해줄 수 있는지.
 
(조아라)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바빴다. 많이 사랑 받지 못한 조아라가 아직 내 안에 있다. 또 '잘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그런 강박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더 잘해야해, 나는 누구보다 못해' 하는 생각이 있다. 왜 예술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누군가와 비교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그늘 때문이었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얽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인이 뭘까,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 아팠던 고통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 고통스럽게 체감하고, 다독거려주고, 보내주고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또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곧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심리상담도 8번 넘게 받아보고 하면서 조금씩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얘기는 아버지한테 해본 적이 없다.
 
조정현·조아라 부녀. 전성기 시절 사진이 걸려 있는 이곳은 조정현씨가 아끼는 공간이다.(사진=김나볏 기자)
 
 
-새로운 공연형식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조아라) 무대에 영상이 나오고, 사운드 아티스트가 나오고, 판소리와 연기를 하는 조아라가 나온다. 이들이 인터랙션 하는 과정이 공연이어서 제목 앞에 '멀티 인터랙티브 굿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여기서 영상은 TV에 나왔던 아버지를 비추는 창이자 다시 장성한 나와 인터뷰하는 영상이 담기는 소통의 창이다. 또 나는 배우이지만 판소리 전공자이기도 하다. 판소리 속에는 움직임도 있고, 연기도 있고, 소리도 있다. 그 소리의 확장이 무대에서 사운드 아티스트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또 현재 퍼포머로서의 나는 현대무용이나 즉흥 움직임을 통해 계속 새로운 몸짓을 개발하는 중이다. 그런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줄 예정이다. 마치 촉수가 뻗어나가듯이 다양한 표현방식과 만나면서 현재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싶다. 나의 예술적 뿌리가 판소리라면, 개인으로서 본뿌리는 아버지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옛것으로부터 뻗어나가 새로운 것을 해나가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조정현씨는 간접적으로나마 참으로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는 셈이다. 떨리거나 하는 마음이 있는지.
 
(조정현) 그렇진 않다(웃음). 다만 내가 출연한 비디오, 스크랩을 다 모아놨는데 그게 이번에 딸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참 흡족하다.
 
-조아라씨의 경우 사이코 무녀라고 본인을 지칭했다. 어떤 의미인가.
 
(조아라) 사실 요즘 사람들은 다 자기 안에 정상적이지 못한 부분, 조그마한 마음의 병이 있지 않을까.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 치유하면서 가야 한다. 내가 예술인으로서 무녀로 살겠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그런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퍼포머로 활동하겠다는 다짐이다.
 
-아버지 조정현과 딸 조아라, 서로에게 서로는 어떤 존재인가?
 
(조정현) 지난 10년간 딸을 쭉 지켜보면서 뿌듯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행복을 전하는 바이러스 같다. 아라가 추구하는 삶이 어떤 길이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라는 최고다.
 
(조아라) '어쩔 수가 없는' 존재다. 부인할 수 없는 존재, 사실은 내 안에서 빼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존재. '인정할 수 밖에 없구나' 싶다(웃음).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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