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피플)6월항쟁 28주년…"민주주의는 다시 전진해야"
6월 뙤약볕 아래에서 김학규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만나다
입력 : 2015-06-08 오후 4:49:12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참석한 김학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사진/뉴스토마토)
 
1987년 6월 거리에서 분출된 민주화의 외침은 영원할 것 같던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되돌린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은 '박종철(당시 23세·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고문·치사·은폐'였다.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공안당국의 주장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는 '이한열 최루탄 사망사고'와 맞물려 6월항쟁에 불을 지폈다.
 
올해로 6월 민주항쟁이 있은 지 28주년. 87년 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MB정부와 박근혜정부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특히 당시 피와 눈물로 민주화를 일군 이들에게 지난 8년은 악몽이다.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을 찾은 그날, 6월의 뙤약볕은 28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도심의 아스팔트를 녹일 듯 내리쬐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은.
 
▲박종철 열사와 대학 84학번 동기로, 학생운동을 같이 했다. 종철이는 언어학과, 나는 국사학과를 다녔다. 그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친구다. ‘박종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있다. 동작구에서 지역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종철 사망 보도 당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것 같은데.
 
▲87년 1월15일이었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으로 수배 중이었다. 종철이의 사망은 우리도 몰랐다. 중앙일보 석간을 통해 알게 됐다. 2단의 짧은 기사로 보도됐다. 신문을 펼쳐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고문에 의한 죽음임을 알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와 함께 나도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박종철을 마지막 봤던 기억은.
 
▲종철이가 유인물에 청타하면 나는 사람들을 모아 밤늦게 제작했기 때문에 자주 만났다. 마지막 기억은 학교에서다. 내가 무슨 말을 전하려고, 쫓아가서 (박종철을) 불렀다. 학교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만났고, 그가 나를 올려다봤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당시 종철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이 무지 선하고, 맑은 친구였다.
 
-박종철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고 박종철 열사. 자료/(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종철이는 참고인으로 잡혀갔지만, 정권은 참고인조차도 물고문할 정도로 정권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종철이가 입을 열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몸을 던져 다른 사람들을 지켰다. 한 개인에 대한 신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신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그게 박종철 정신이다. 결국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재야의 사람들은 그저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토록 정권은 잔인했다.
 
-올해로 6월 항쟁 28주년이다. 사람들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이 정권과의 타협 끝에 87년 헌법으로 이어졌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깝다.
이 시대를 겪지 않았던 세대의 경우 그 전의 아픔·헌신·노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판단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6월 항쟁이 갖는 의미가 다시 과거로 되돌려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박종철·이한열의 죽음이 무의미해질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지고 막아내고, 다시 진전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성장했으면 좋겠다.
당시 6월 항쟁은 전 국민이 결집해서 (정권의) 양보를 얻어낸 과정이었다. 이후 토대를 강화하고 아래로부터 힘을 다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제대로 안 됐던 게 아쉽다. 최근 다양한 지역을 중심으로 기반을 만들고 다지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이런 움직임이 결합될 때 지금의 민주주의의 후퇴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지난 1987년 1월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군이 참고인 신분으로 물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사진/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지금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한계는 있었지만, 그래도 과거 정권과 달리 독단적이지 않고 국민과의 소통이 이뤄졌다. 진전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이 독단적인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명박 정권은 사적 이익을 추구했고, 경박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정선거로 탄생한 정부다. 대선 당시 국정원 개입이나, 사이버상에서 (댓글 작업 같은 게) 광범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싶다. 이런 부분에 대해 하나도 의식하지 않은 채, 더 독단적으로 일하고 있다. 과거 70년대 박정희 정권 못지않게 국민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87년 당시였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었다는 얘긴가.
 
▲그렇다. 애당초 집권 과정도 그렇고, 이후 모습도 그렇다. 이전 시대와 지금과 또 다른 점은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하는 방법이 너무 개인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게 문제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당시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의 취업이나 그런 게 더 중요하다. 우리 때까지는 사실 대학만 가면 취업 문제가 큰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정치적 문제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대학은 많이 가지만 취업, 생계 등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암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함께 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런 것이 어려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박상옥 대법관의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심정은.
 
▲28년 전 수사검사였던 사람이 지금 대법관이 됐다. 사실 저희는 '그 자체로 문제다' 이렇게 접근했는데, 구체적으로 일부 공개된 재판자료를 보니까 박상옥 대법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이다.
당시 박민창이 구속될 때 검찰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드러난 게 없었고, 안상수의 ‘안검사의 일기’에서 드러난 게 전부지만 이것도 사실은 수사검사를 옹호하는 글이다.
그런데 2009년 과거사위원회에서 새로운 내용이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쪽에 문제를 집중했다. 검찰이 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느냐, 그 문제를 밝혀달라, 당시 청와대의 개입 때문이 아니냐, 이렇게 초점을 맞췄다. 결정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검찰은 관계기관의 외압 때문에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박종철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박상옥 대법관은 청문회 때 보니까 이 결정문을 보지도 않았다고 얘기하더라. 자기 때문에 일어났던 사건을, 이번에 봤다고 하는 건, 사실 충격이었다. 본인에게도 큰 사건이라고 보는데, 본인도 찝찝했을 것 같은데. 2009년 결정문에 검찰이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박상옥 대법관을 평가하자면.
 
▲그 당시도 비겁하고 뻔뻔했던 인물이었는데 2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겁하고 뻔뻔하다. 외압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충격이다. 그런 사람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하고 임명하고. 이런 문제가 드러나도 처리하지 않는 것이, 이런 사람들이 우리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정상인가.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이룬 민주주의가 퇴색하고 있다. 최근 민주주의와 인권이 얼마나 불안한가. 끝내 포기하지 않는 집권 세력의 모습.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계기가 됐다.
아직도 의문의 죽임을 당해서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고문에 의한 사망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의 실체가 많이 은폐되어 있으니 잘 파헤치지 못한다. 박종철 사건처럼 많이 알려진 사건이 이 정도면 다른 사건은 어떻겠나. 
 
김영택·이충희 정리 ykim98@etomato.com
김영택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