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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번역한 한국어판을 읽고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자니 적잖이 망설여졌다. 저자가 내놓은 결과물의 '순수 버전'을 읽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다. 전 세계에서 호평과 동시에 논란이 쏟아졌던 그 책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돈이 돈을 버는 속도인 자본 수익률이 사람이 돈을 버는 경제 성장률보다 빨라 앞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고소득층 대상으로 부유세를 매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돈이 있으면 돈을 빨리 벌 수 있다'는 얘기 정도는 많은 곳에서 들었다. 연암(燕巖) 박지원의 <허생전>에도 얼핏 등장한다. 허생은 변 부자에게 1만냥을 빌려 빠른 속도로 투자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책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대충' 아는 것을 방대한 통계를 통해 증명한다는 데 있다. 책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문제를 300년에 달하는 통계를 바탕으로 15년간 공동작업 등을 통해 분석한 뒤 글로벌 자본세 등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통계의 정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 책은 경제학 못지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하는 점과 "최선의 추정치"라고 고백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 주장을 해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서민을 대상으로 증세해 복지 재원으로 쓰겠다는 움직임이 한창인 현실에서 이 책이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지난 20일 연세대에서 열린 그의 강연회에 참석해 저자의 책 소개를 2시간가량 들었으니 원본을 읽지 못했다는 무책임의 혐의는 조금이나마 벗은 것 같다. 한국어판은 국내 번역 전문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저자가 '훌륭하다'고 평가한 영어판을 풀고 프랑스어판과도 대조했다. 서장 등 중요한 부분은 프랑스어 원본을 직접 번역했다. 그것을 대표 역자가 다시 정리했다고 한다.
▶ 전문성 : 불평등과 부유세 등의 키워드가 책 끝까지 살아있는 아주 긴 논문이랄까. 학술 서적이다. 수학은 아주 조금 나온다. 'α=r x β'와 r > g 같은 것들. 중국의 미래를 점치는 부분과 퇴직연금 관련한 지적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 놓고 안 읽는 책'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적에 손뼉을 치면서 읽지 않고 넘어가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다.
▶ 대중성 : 문학을 소개한 책이 문학은 아닐 것이지만,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문학작품과 타이타닉 등의 영화도 등장해 어렵지 않은 경제 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대중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불평등이란 주제 자체가 그러하다. 700페이지만 읽으면 된다.
▶ 참신성 : 이 책에서 고(故) 스티브 잡스를 만나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설과 영화를 통해 경제와 불평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저자의 시도는 그의 영어 억양 만큼이나 발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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