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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브라질)①스위스에서 남아공, 한국의 월드컵 도전기
입력 : 2014-06-09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원국 수는 국제연합(UN) 회원국보다 많다. 한국시간으로 6월13일 시작하는 2014 브라질월드컵 무대에 대한민국도 있다. 약 209개국에 이르는 FIFA 가입국 중 초대된 32개 국가에 속한다. 적어도 16개 국가(16강) 안에 드는 게 축구대표팀과 월드컵을 보는 이들의 바람이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시작으로 60년 만에 대한민국은 9번째 월드컵에 나선다. 1933년 대한축구협회 창립일로부터는 81년이 흘렀다.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어떻게 흘러왔으며 브라질에선 어떻게 이어질지 내다보려 한다. '홍명보호'의 장단점을 살핀 뒤 조별 리그 상대인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를 지나 월드컵을 빛낼 스타 선수들까지 살펴본다. (편집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하 대표팀)은 오는 6월 브라질월드컵 무대에 나서며 8회 연속 월드컵 진출국이 됐다.
 
이는 브라질(20회), 독일(15회), 이탈리아(13회), 아르헨티나(10회), 스페인(9회) 등 세계 축구 강국들과 견줄만한 기록이다. 유럽과 남미가 아닌 아프리카, 북중미, 아시아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적표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진출하며 한국은 세계 축구 무대에 나섰다.
 
이후 월드컵과 인연이 없던 대표팀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연이어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954년 스위스월드컵
 
성적: 2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헝가리 패(0-9) 터키 패(0-7)
의의: 전쟁의 아픔을 딛고 첫 월드컵 출전
 
대표팀은 당시 일본과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1차전 5-1승, 2차전 2-2 무승부를 거둬 사상 첫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대표팀 22명은 프랑스 항공기와 미군공군기로 인원을 나눠 비행기를 탔다. 약 60시간 동안 이동해 경기 전날 밤에서야 겨우 스위스에 도착했다.

비행 피로를 느낄 새도 없었다. 16개국이 출전한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이름을 올린 대표팀은 곧장 세계무대의 벽을 느꼈다. 고(故) 김용식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6월17일 취리히에서 열린 형가리와 경기에서 대패했다. 당시 헝가리는 우승후보로 꼽혔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정상을 차지한 이후 3년 동안 32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은 강팀이었다.

이어진 터키와 경기에서도 대패한 대표팀은 투지는 좋았으나 첫 골을 넣을 정도로 세밀하진 못했다.

대표팀은 "전쟁을 치른 국가가 월드컵에 참가했다"는 화제만 모은 채 짐을 싸야 했다. 대표팀 골문을 지킨 홍덕영은 인터뷰에서 "슈팅이 얼마나 강한지 가슴과 배가 얼얼했다"고 말했다.

6·25 전쟁(1950~1953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음에도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성적: 1무 2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아르헨티나 패(1-3) 불가리아 무(1-1) 이탈리아(2-3패)

득점: 박창선(아르헨티나전) 김종부(불가리아전) 최순호-허정무(이탈리아전)
의의: 월드컵 사상 첫 골과 첫 승점(무승부 1점)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과 만났던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의 경기 모습. 사진 속 상대는 독일의 로타르 마테우스. (사진캡쳐=FIFA 홈페이지)

대표팀은 32년 만에 월드컵 진출을 이룩하며 부푼 꿈을 안았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차범근과 당대 최고의 축구 신예로 꼽히던 김주성,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트라이커 최순호,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까지 진출한 허정무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도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세계적인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다. 대진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정남 감독은 허정무에게 마라도나(아르헨티나)를 밀착마크로 붙이며 철저한 대인방어를 강조했다. 허정무는 "열심히 해서 한국 축구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강한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마라도나와 세계의 벽은 높았다. 대표팀은 '태권 축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분전했으나 수준 차를 드러냈다.

'원조 캐논 슈터' 박창선의 아르헨티나전 25m 중거리 슛 득점과 '축구천재'로 불리던 김종부의 골, 최순호와 허정무의 득점에서 국민들은 위안을 찾았다. 국내 수준급 선수들도 잘만 다듬으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한 대회였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성적: 3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벨기에 패(0-2) 스페인 패(1-3) 우루과이(0-1패)

득점: 황보관(스페인전)
의의: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 대한 인식 시작
 
이탈리아월드컵의 조 편성을 받아든 대표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전 월드컵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해볼 만한 조 편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크지는 않지만 조심스레 16강 진출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까지 흐름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회택 감독이 이끈 당시 대표팀은 아시아 예선을 쉽게 통과했다. 2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상승세와 함께 대표팀은 아시아 무대의 강호로 불렸다.

하지만 유럽, 남미와 대표팀의 축구는 수준차가 났다. 아시아 강호인 한국대표팀도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무적함대'로 불리던 스페인전 패배는 예상된 결과였다. 대표팀은 스페인의 미첼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했다. 그는 당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6번 우승에 기여한 스타 선수였다.
 
대표팀은 첫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지며 기세가 많이 꺾였다. 대표팀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도 득점 없이 지며 충격에 휩싸였다. 3전 전패의 성적표는 아시아 지역 예선과는 너무도 다른 결과였다.

스페인전에서 나온 황보관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 골이 유일한 득점이었다. 대표팀과 한국 축구계를 둘러싸고 세계화에 대한 움직임이 조금씩 싹텄다. 월드컵을 고려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성적: 2무1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스페인 무(2-2) 볼리비아 무(0-0) 독일 패(2-3)

득점: 홍명보-서정원(스페인전) 황선홍-홍명보(독일전)
의의: 강호들과 선전하며 한국 축구의 중흥기 시작
 
당시 대표팀은 '스타군단'이라 불렸다. 홍명보, 황선홍, 고정운, 하석주, 서정원 등이 있어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예선 막판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다소 의외의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 살만이 경기 막판 1-1 동점을 만드는 골을 터뜨렸다.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을 눈앞에 뒀던 일본은 한국 대표팀에 골득실 차로 밀리며 쓰라린 눈물을 삼켰다.

일본은 아직도 이를 '도하의 비극'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며 살만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초청해 환영 행사를 열기도 했다.

어렵사리 미국월드컵에 나간 대표팀은 강호 스페인과 볼리비아전에서 잇따라 무승부를 기록했다. 사상 첫 16강 진출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특히 스페인과 경기에서 후반에 몰아친 홍명보와 서정원의 골은 온 국민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인 전 대회 우승국 독일전에서 패했다. 16강 진출의 꿈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금발의 폭격기'라 불린 위르겐 클린스만은 전반에만 독일의 3골 중 2골을 몰아쳤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한국은 황선홍의 골과 홍명보의 30m 가까운 중거리 슈팅 득점에 이어 경기 막판까지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평균 나이 30.6세의 독일 선수들은 무더위에 지쳐갔다. 경기 종료 직전 홍명보의 프리킥이 수비수 벽을 맞고 튀어나오자 온 국민은 안타까운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가장 아쉬운 월드컵으로 꼽히는 대회가 미국월드컵이다. 이 대회 이후 대표팀을 둘러싼 축구계는 조만간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품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성적: 1무2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멕시코 패(1-3) 네덜란드 패(0-5) 벨기에 무(1-1)

득점: 하석주(멕시코전) 유상철(벨기에전)
의의: 투혼과 세밀함이 더해져야 한다는 깨달음
 
프랑스월드컵의 전망은 밝았다. 월드컵 예선부터 황선홍-최용수 투스트라이커가 가동됐다. 서정원의 빠른 발은 대표팀의 측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층 경험이 농익은 골키퍼 김병지도 건재했다. 수비진은 홍명보가 든든하게 이끌었다. 여기에 대표팀을 지휘한 차범근 감독은 노트북을 사용해 과학적인 분석을 도입하는 등 대표팀의 달라진 월드컵 준비 모습을 보였다.
 
황선홍이 부상으로 제외됐지만 조 추첨 이후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다. 멕시코를 잡고 네덜란드에 지더라도 벨기에와 경기에서 비긴다면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멕시코전에서 하석주는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나 이내 상대 미드필더에게 백태클을 걸어 퇴장 당했다. 하석주에겐 '가린샤 클럽(골을 넣고 퇴장당한 선수들을 일컫는 클럽)' 가입이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1명이 부족한 한국은 상대의 압박에 고전하며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네덜란드전은 더욱 뼈아팠다. 당시 네덜란드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너희 맘대로 하라"며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믿고 맡겼다. 오베르마스,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등 네덜란드의 선수들은 종횡무진 한국의 골문을 위협하며 5골을 퍼부었다. 경기 막판 경기에 투입된 이동국의 중거리 슈팅만이 대표팀에게 한 줄기 위안이 됐다.

이날 대패로 한국은 월드컵 도중 감독 경질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차범근 감독은 선수단을 남겨둔 채 귀국했다. 이어진 벨기에전에서 이를 악문 대표팀은 유상철의 골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기록하는 데 만족했다. 여기저기선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평했지만 축구계의 차범근 감독 경질을 놓고 "성급했다"는 비판도 따랐다.

그 어느 때보다 16강 진출 가능성이 밝았던 만큼 월드컵 이후 대표팀과 축구계를 둘러싼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혼란을 가중시켰다.
 
◇2002년 한일월드컵
 
성적: 4강(조별리그 2승1무)
조별리그: 폴란드 승(2-1) 미국 무(1-1) 포르투갈 승(1-0)

토너먼트:  이탈리아 승(2-1) 스페인 승(승부차기) 독일 패(0-1) 터키 패(2-3)
득점: 황선홍-유상철(폴란드전) 안정환(미국전) 박지성(포르투갈전) 설기현-안정환(이탈리아전) 이을용-송종국(터키전)

의의: 사상 첫 승리와 16강 진출을 넘어 역대 최다인 4강 진출
 
◇2002 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연장 후반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는 안정환. (사진캡쳐=FIFA 홈페이지)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에 대패를 안긴 거스 히딩크(전 네덜란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 선수들은 감독이 아무 이유 없이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느냐"는 히딩크의 질문에 대한축구협회는 "그렇다"고 답했다. 여러 국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히딩크는 자기 뜻대로 팀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 직전까지도 히딩크 감독에겐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런 잡음이 따라다녔다. 체코와 프랑스에 잇따라 0-5로 지자 언론과 일부 축구팬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러 잡음을 차단하고 대표팀의 홍보 창구를 일원화했다. 게다가 그는 "선수들의 기술은 (유럽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체력을 더 길러야 한다"며 이전까지 한국 축구계가 갖고 있던 인식과는 다른 진단을 내렸다.
 
인맥과 학연·지연, 이름값을 따지지 않는 선수 선발도 눈에 띄었다. 이동국이 탈락했고 박지성, 송종국, 김남일, 이을용 등 새로운 얼굴이 속속 대표팀에 발탁됐다. 베테랑인 홍명보 또한 얼마간은 대표팀 문밖에 있어야 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기 때문에 여론은 16강 진출을 더욱 갈망했다. 안방에서 창피를 당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결과는 4강이었다. 체력에서 대표팀은 상대국들을 압도했다. 황선홍은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첫 승을 이끌었다. 명예로운 마무리였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이 가득했다. 4강까지 승승장구한 대표팀은 독일과 터키에 패해 4위를 차지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적을 써냈다. 홍명보는 각국 미디어 대표들이 선정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브론즈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투표에서 홍명보는 독일의 올리버 칸(골든볼·592표)과 브라질의 호나우두(실버볼·126표)에 이어 108표를 얻었다.
 
히딩크 감독의 '마법'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축구에서 감독 한 명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팬들과 축구계 모두 깨달은 대회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성적: 1승1무1패(조별리그 탈락)
경기: 토고 승(2-1) 프랑스 무(1-1) 스위스 패(0-2)

득점: 이천수-안정환(토고전) 박지성(프랑스전)
의의: 원정 최초 1승과 유럽 징크스 탈출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 압신 고트비 코치 체제가 이어졌다. 히딩크 감독이 남긴 네덜란드 출신들의 진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추억이 온 국민들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도 건재했다. 황선홍의 자리는 조재진이 메웠다. 원정 첫 16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토고를 잡고 스위스에게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낸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기대감이 점차 높아갔다.

실제 토고전에서 이천수의 절묘한 프리킥과 안정환의 중거리 슈팅이 골망을 가르자 축제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다. 여기에 프랑스와 경기에서 박지성의 동점 골로 무승부를 기록하자 16강 진출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복병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였다. 당시에도 강력한 수비와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던 스위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대표팀은 전반에 필립 센데로스에게 헤딩 골을 내준 데 이어 후반에는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추가 골을 내줬다.

이 과정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이 일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프라이에게 공이 연결되는 순간 멈칫하며 주심을 바라봤다. 그러나 주심인 오라시오 엘리손도(아르헨티나)는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공은 골문을 통과했고 이운재 골키퍼를 비롯한 대표팀 수비수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이 가운데 당시 경기를 해설한 신문선 해설위원은 "오프사이드가 아니다"라고 소신 있게 말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소속 방송사는 그를 대회 도중 귀국시키기도 했다. "FIFA회장인 제프 블래터가 스위스 사람이라 오심이 나왔다"는 주장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여론이 진정되자 스위스의 그 골은 심판의 판정이 옳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 모두 올바른 판정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회를 마치자 휘슬이 울리기 전까진 플레이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축구를 국가적 입장에서보다는 국제 공통어인 '규칙'에 맞춰봐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기대감이 높아진 일부 축구팬들은 실망감에 허탈해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성적: 16강(조별리그 1승1무1패)
조별리그: 그리스 승(2-0) 아르헨티나 패(1-4) 나이지리아 무(2-2)

토너먼트:  16강 우루과이 패(1-2)
득점: 이정수-박지성(그리스전) 이청용(아르헨티나전) 이정수-박주영(나이지리아전) 이청용(16강 우루과이전)

의의: 원정 최초 16강 진출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와 경기에서 박지성. (사진캡쳐=FIFA 홈페이지)

이전까지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지냈던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여러 외국인 감독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대한축구협회는 국내 지도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유럽 무대에서 확실히 자리 잡은 박지성(당시 맨유)을 중심으로 이청용과 박주영을 향한 기대감이 높았다. 김남일과 이영표도 여전한 기량을 보였다. 기성용의 등장은 중원을 더욱 두텁게 했다. 지난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막판에 제외된 이동국과 월드컵 경험이 풍부한 안정환의 한 방도 기대했다.

대표팀은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따냈다. 16강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대를 잡았다. 대표팀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게 대패를 당하며 큰 벽을 실감했다. 리오넬 메시를 잡기 위해 집중하자 오히려 카를로스 테베즈와 곤살로 이구아인 등 발 빠른 나머지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내줬다. 경기 초반 박주영의 자책골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표팀은 다행히 나이지리아전에서 2-2로 비겼다. 후반 4분 박주영이 2-2 균형을 맞추는 프리킥 골을 넣은 이후에는 오히려 한국의 공격이 더 날카로웠다. 원정 최초 16강 진출을 이룬 대표팀은 운동장을 돌며 응원단과 기쁨을 나눴다.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 대표팀은 우루과이와 만났다.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첫 골을 내주자 이청용이 후반 23분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자 재차 수아레스가 후반 35분에 도망가는 골을 넣었다.

대표팀은 우루과이전 막판 연장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박지성은 후반 43분 이동국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상황에서 힘없이 굴러가는 빗맞은 슈팅을 하고 말았다.

다음 상대인 가나를 고려해 내심 8강 이상까지 바라보던 한국의 남아공 도전기는 아쉬움으로 끝났다. 월드컵과 인연이 없던 이동국 또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뤄 박수를 받았다. 사상 첫 아프리카 대륙 개최로 열린 남아공월드컵은 아쉬움과 좋은 기억이 공존하는 대회로 기억에 남았다.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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