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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방황하는 칼날', 만약 당신이 딸 잃은 아버지라면
입력 : 2014-04-01 오후 3:14:47
◇'방황하는 칼날'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딸을 잃었다. 아내를 사별한 뒤 남은 유일한 피붙이였다. 남학생들에게 붙잡혀 겁탈을 당하던 죽 약물사고로 죽었다. 익명의 제보로 가해자의 집을 찾았다. 가해자들은 동영상을 틀고 깔깔대면서 웃고 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겠는가.
 
이는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방황하는 칼날'의 전반적인 내용이면서 화두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 신문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10대 범죄에 대해 고민하자는 메시지가 차갑고 냉소적으로 담겨 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제작진은 각종 SNS를 통해 2만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나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 30.1%, '딿을 잃은 아버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 61.4%, '그래도 살인은 잘못된 행동'이 8.5%로 집계됐다. 대부분이 가해자를 죽일수도 있다는 감정이 드러난다.
 
영화는 이러한 대중적인 감정을 딸 잃은 아버지 상현(정재영 분)을 통해 드러낸다. 익명의 제보로 알게된 한 가해자를 방망이로 때려 죽이고 다른 가해자를 찾아 강원도 눈바닥을 거닌다. 가해자의 얼굴도 모르고 찾아헤맨다는 점이 미련하다. 하지만 익명의 제보를 통해 또 하나의 가해자를 만난다. 죽이려 덤벼드는 상현 앞에서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감옥가면 되잖아요"라는 이 10대 가해자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정재영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상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경찰 억관(이성민 분)은 상현을 살인자로 대해야 한다. 누구보다도 상현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살인자가 된 상현을 잡아야 한다. 감정은 이해하는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억관을 통해 영화는 중심을 잡는다. '살인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억관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일까.
 
약물사고였다. 10대라는 점과 갑작스럽게 약물로 죽었다는 이유로 10대 가해자 두식은 길어야 6개월정도의 징역살이만 하면 된다.관대해도 너무도 관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이 사건과 무관하게 극중에서 게임팩 때문에 친구를 죽인 10대 가해자가 있다. 억관은 틈틈히 그를 찾아간다. 그는 친구들과 즐겁게 농구를 하고 있다. 그는 억관이 불편한가 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이제 그만 찾아오세요. 죗값 다 치뤘잖아요"다. 정말 그는 죗값을 다 치른 것일까. 이정호 감독이 말하고 싶은 부분이 곳곳에 숨어있다.
 
◇서준영-이성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메시지가 강렬한만큼 완성도도 높다. 무거운 분위기의 상현과 억관을 조연과 단역이 가벼운 행동으로 풀어준다. 신입경찰 현수(서준영 분)의 진정성도 무거운 영화를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무거운 돌덩어리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감정이 중요한 영화다보니 스케줄을 순차적으로 배치했다. 최대한 배우의 감정을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중요한 순간 스크린을 가득 메운 클로즈업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사보다 얼굴로 승부한다.
 
늘어지는 장면이 없다. 등장하는 인물은 많지 않지만, 빠른 전개로 심리변화를 묘사한다. 강원도 설원을 이용한 배경은 영화의 고독함을 표현한다.
 
상현을 맡은 정재영은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답게 또 한 번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복수를 위해 쫓는 선한 아버지다. 최근 작품 '열한시', '플랜맨'에서의 인상과 다른 것은 물론 기존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미지다. 골프가방을 메고 눈밭을 헤치는 모습은 처연한 모습은 강하게 남는다. 딸을 잃은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완벽히 표현했다는 평가다.
 
◇이성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성민은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억관의 심정을 표정으로 드러낸다. 영화 내내 그 고민하고 있는 심정이 묻어난다. 쉽지 않은 역할을 오랜 연기 경력으로 풀어낸 듯 싶다. 영화 말미 상현을 향한 외침은 뇌리에 깊이 남는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외모를 가진 서준영은 신참 형사 현수를 연기한다. 어리바리하지만 "나라도 그 애들을 죽여버리겠다"며 법 위에 도덕을 우선시하는 인물이다. 정재영과 이성민이라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색채를 발한다.
 
배우들의 호연,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과 스토리, 강렬한 메시지가 혼합한 영화다.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법과 도덕, 아버지와 딸, 10대의 방황 등 여러가지 키워드가 머릿 속을 혼재한다.
 
이 시대 아버지들이라면 한 번쯤 꼭 보고 같이 분노하고 고민했으면 하는 영화다.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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