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가을과 함께 루시드폴이 6집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올 초 콘서트로 관객을 만나고 <무국적 요리>라는 소설책을 내긴 했지만 정규 앨범을 통해 음악가로서 긴 호흡을 보여주는 것은 2년 만이다. 지난해에는 활동을 쉬고 긴 휴식을 취한 바 있다. 이번 앨범 발매가 더더욱 반갑고 궁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자들의 '약음(弱音)' 같은 노래를 부르길 소망하며 만들었다는 이번 6집 앨범의 제목은 '꽃은 말이 없다'이다.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듯 선공개된 음원을 들어보니 곡들은 미묘하고 섬세한, 일상의 각기 다른 표정을 담고 있었다. 음악을 듣다 보니 지난해 공백기와 이번 앨범 작업이 루시드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6집 발매를 한 주 앞두고 서울 신사동 안테나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음악에 대한 고민, 새 앨범에 대한 생각을 스스럼 없이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에서는 안정감과 여유가 느껴졌다. 이야기의 가지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다가도 결국 다시 한가지로, 음악 이야기로 모여들었다.
(사진제공=안테나뮤직)
◇"공백기 동안 '나'에 대해 알게 돼"
공백기에 대해 묻자 "스스로 만들었던 거품을 많이 없앤 시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소속사의 유희열, 정재형, 이적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선배 음악인들과 어울려 지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붕 떴던 기분'을 차분하게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중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내 음악에 그런 부분이 얼마나 더 필요한 건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 음악을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해야 하는지, 내 취향대로 해야 하는 건지 하는 부분들이 혼란스러웠어요."
쉬는 동안 겪은 치열한 고민 중 또 하나는 자신의 노래에 대한 것이었다. 루시드폴에게 흔히 따라붙는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음악 하는 데는 되려 짐이 됐다. 감수성 짙은 노랫말의 긍정적 평가에 대해 "한편으로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할 때가 있다"고 루시드폴은 말했다. "'나도 가사가 다가 아닌데', 이런 항변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살짝, 내가 내 노래에 삐쳐요(웃음). '만약 내가 가사 없는 곡을 쓰면 내 음악은 들을 게 없는 건가?' 하는, 그런 물음표가 생기는 거죠."
이런저런 음악적 고민들이 결국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레 정리됐다. 지난 봄 정기공연을 하는 한달 동안 매일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에게 불만스러웠던 부분과도 화해했다. "노래를 하다 보니 '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행복하게 하면 되겠다, 능력 밖으로 애를 쓰거나 튀려고 할 필요 없고 그냥 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노래를 하면서 살아가면 되겠구나' 싶었죠." 그러니까 이번 신보는 이를테면 루시드폴의 치열한 음악적 고민에 대한 중간 결과물쯤 되는 셈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표정, 음악에 담다
오는 23일 공개되는 앨범에는 '검은 개', '강', '나비', '햇살은 따뜻해', '서울의 새', '늙은 금잔화에게', '연두', '가족', '바람 같은 노래를', '꽃은 말이 없다' 등 총 10곡이 담긴다. 하나같이 일상의 정취와 사유가 담긴 곡들이다.
(사진제공=안테나뮤직)
특히 다양한 기타의 다양한 소리에 대한 탐구가 두드러진다. 곡마다 달라지는 기타 소리가 곡의 풍경에 표정을 새겼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영국에서 들여온 D-홀과 오발 홀 기타를 사용한 '연두'나 '햇살은 따뜻해' 같은 곡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뿐만 아니라 루시드폴의 예전 음악과 분명히 다른, 집시재즈 음악의 밝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프랑스에 있을 때 방송에서 집시재즈 음악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정말 싫어했어요(웃음). 기타소리도 되게 쨍쨍거리고, 굉장히 빨리 치니까 정신도 없고. '왜 저렇게 단순하게 2비트로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올해 여름에 곡 작업을 하면서 한 순간에 '꽂혔다'. 계기를 묻자 음식에 대한 비유로 답을 대신했다. "음식도 왜 홍어 같은 거,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안 먹지만 또 마니아가 있잖아요. 홍어를 굉장히 싫어하던 내가 어느 순간엔가 '이렇게 독특한 맛이?' 하면서 마니아가 되어 버린 경우에요(웃음)."
재즈리듬이 가미됐지만 루시드폴 식의 재즈리듬이다.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루시드폴 특유의 섬세함을 저버리지 않는다. '무위(無爲)의 위(爲)'를 지향한 까닭에 마스터링 작업 또한 쉽지 않았다. 마스터링에 대해 "출판으로 치면 최종적으로 내용을 책 모양으로 앉히는 것"이라고 비유한 루시드폴은 그 동안 겪었던 마음 고생을 털어놨다. "이번 앨범의 컨셉트 상 원음을 그대로 놔둬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0.5dB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소리가 확확 바뀌거든요. 하지만 마스터링을 그렇게 할 순 없는 거고…"
평소보다 소리에 민감했던 것은 이번 앨범 속 풍경의 정취 때문이기도 하다. 곡들에는 지난해 이사한 한옥에서 루시드폴이 바라본 하늘과 꽃과 나무, 골목에서 만난 검은 개, 삼청동 공원의 새소리, 바람소리 같은 것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덧붙여 루시드폴은 "1930년에 유명을 달리한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면서 가네코 미스즈에 대해 "굉장히 여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짠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보낸 시인의 마음이 루시드폴의 음악으로 화한 셈이다.
이번 앨범의 국내 발매와 더불어 새롭게 시작된 루시드폴의 음악적, 감성적 연대는 오는 11월 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올림픽 공원 K-아트홀에서 열리는 공연 '꽃은 말이 없다'를 통해 이어진다. 음악을 통한 해외팬과의 만남도 계속된다. 앞서 17일 첫 베스트 앨범을 낸 일본에서는 11월 내 이번 6집 앨범 역시 발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