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세연·박승원기자] 갈 곳 없는 시중자금이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
저금리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리+알파(α)'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개인 고객은 물론 기관투자가의 자금마저 몰리고 있는 것. 여기에 일부 증권사들은 특정금전신탁을 전략적으로 확대한 측면도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특정금전신탁 상품의 판매와 운용 측면에서의 규제차익 거래 발생 가능성 등을 이유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개인 투자자의 리스크 부분에서의 규제는 이해하지만, 기관투자가에게도 일괄된 룰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증권사 특정금전신탁 100조 돌파..전년比 32.2조↑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회사의 총 금전신탁 수탁고는 213조로 집계됐다. 전년 말 169조8000억원보다 25.5% 증가했다.
(자료제공=금융감독원)
신탁재산별로는 특정금전신탁이 199조8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말대비 28.1%나 늘어났다. 불특정금전신탁은 13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13조8000억원보다 4.3% 감소했다. 재산신탁의 경우에는 22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 239조1000억원보다는 5.7% 감소했다.
금융업권별 특정금전신탁 점유율은 살펴보면 증권회사가 51.1%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어 은행(48.2%), 보험(0.7%) 등의 순이었다.
증권사가 직접 판매하는 특정금전신탁의 수탁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2조1000억원으로 전년 말 70조원보다 30조 이상 늘어났다. 은행의 특정금전신탁 수탁액(96조4000억원)보다도 5조원 넘는 수준이다.
◇투자자·증권사 간 니즈 일치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에 돈이 몰린 것은 증권사의 새로운 수익 창출에 대한 모색과 투자자의 니즈가 일치한 영향이 크다.
저금리기조가 지속되면서 개인과 기관투자가가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금리+알파(α)수익'을 낼 수 있는 특정금전신탁이라는 상품에 서로의 니즈가 일치하게 된 것.
특정금전신탁이란 투자자가 투자 대상과 방법을 정한 뒤 돈을 맡기면 그 대상에 투자한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을 말한다. 증권사들은 투자자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운용수수료를 받는다.
최근 증권사들이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파는 주력 상품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다. 특정 국가나 회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얹을 경우엔 금리가 높아진다는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ABCP를 발행하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1% 수준의 시중은행 금리가 현실화되는 등 저금리기조가 지속되면서 단기·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자금 운용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거래대금 급감 등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증권사들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증권사간 서로의 니즈가 일치한 점이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돈이 몰리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기관투자가 수요↑..교보證, 전략적 확대
개인과 일반법인 외에도 우정사업본부,
현대차(005380) 등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몰린 점도 증권사 특정금전신탁 수탁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채권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잘 나오면서 자산의 선택과 관리가 용이한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기관투자가의 관심이 모아진 것.
한 증권사 신탁영업 관계자는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에 개인과 일반법인 외에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많이 늘었다"며 "특히, 시중의 자금 가운데 우정사업본부와 현대차가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들어간 금액이 30조원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교보증권(030610) 등 일부 증권사들이 전략적으로 특정금전신탁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교보증권 관계자는 "저금리기조 영향 외에도 회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특정금전신탁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며 "영업 RM을 늘리고, 신규 기관투자가를 개척하면서 이들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유치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교보증권이 지난해 5월부터 특정금전신탁에 전략적으로 나선 것 같다"며 "지난해 5월 2조원의 수탁고가 현재 10조원이 넘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특정금전신탁 규제차익 거래 개선 vs. 기관투자가에 일괄 적용은 본질 훼손
최근 특정금전신탁에 자금이 몰리면서 금융당국은 특정금전신탁 상품의 판매와 운용 등 신탁 본연의 취지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특정금전신탁이 펀드와 유사한 상품으로 판매·운용되고 있는 등 영업이 다소 변질되고 있고, 규제 차익 거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일부에서는 불완전 판매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정금전신탁과 펀드는 자본시장법상 구별되는 상품이지만, 실질적으로 유사한 형태로 판매·운용되고 있어 규제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관련 규제를 강화해 특정금전신탁이 본래 취지에 맞게 판매·운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증권사들은 개인투자자의 리스크 부분에서의 규제는 이해하지만, 기관투자가에게도 일괄된 룰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증권사 신탁영업 관계자는 "수십조의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의 입장에서는 종목을 선택하고, 위탁해 매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특정금전신탁이 자산 관리가 용이하다고 판단해 투자하는 것이 규제 차익인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반 투자가의 경우 리스크가 존재하는 부분에 있어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의 효용성을 이유로 접근해 기관투자가의 자금이 증가한 것은 생각 안하고, 단지 수치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이유로 일관된 룰을 규정하는 것은 신탁의 본질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상반기 중 금융투자업무 규정의 개정과 모범 규준을 마련하고, 법 개정이 필요할 경우 법령 개정 발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