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잔업이 없으니 오후 5시30분, 7시30분 퇴근 시간이면 이곳에 사람이 없어 적막할 정도다. 이제 다 망하고 3곳의 가게만 남았는데, 막걸리 한 사발 팔기도 힘들다.”
지난 1997년 5월부터 경남 진해 STX조선해양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H씨는 극심하게 얼어붙은 지역 경기에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대동조선 영업과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IMF 당시 퇴직해 조선소 앞에 50평 되는 초가집을 매입해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 STX조선해양 근로자들로 술집에는 자리가 없어 신문지를 깔고 막걸리를 마실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그래서 1억원이 넘는 빚을 불과 1년 만에 다 갚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진해 대표적 번화가인 석동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아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인근 고깃집 주인 K씨는 “STX조선해양 월급날이면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 3~4명씩 짝을 지어 몰려 다녔다”면서 “STX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배관 용접 등 기술이 있는 근로자들은 통영이나 고성으로 일감을 찾아 빠져 나가면서 경기가 더욱 안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STX그룹이 경영 악화를 겪으면서 창원, 진해, 마산까지 인근 지역경제가 ‘연쇄적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창원시 진해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STX조선해양은 창원·마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지역경제 발전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근로자들은 위기감에 휩싸였고, 이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창원시내 STX그룹의 경영정상화를 기원하는 현수막 모습.(사진=뉴스토마토)
경남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STX조선해양의 사내·외 고용인원은 6만9000여명(사내 9000명, 사외업체 6만명)에 달한다.
이와 함께 협력사는 1400개 이상으로 가족들까지 지갑을 닫을 경우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STX 사태는 소상공인뿐 아니라 지역 부동산 거래시장의 침체 가속화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 남양동 구옥 40평대(132제곱미터) 2채의 매매가는 1억4500만원, 명동 남향 41평(135제곱미터) 주택 매매가는 평당 150만원 수준이다.
인근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STX의 협력사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진해를 떠나면서 부동산의 장기불황이 우려되고 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생계형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밑바닥 경제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소 기술인력 모집 공고.(사진=뉴스토마토)
인력난을 겪고 있는 조선사들이 이참에 STX조선해양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지역경제의 불균형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창원상의 관계자는 “STX조선해양이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진행 중이어서 지금 구체적인 수치는 말할 수 없다”면서 ”STX그룹은 경남을 대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 정상화 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STX조선해양이 최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STX중공업과 STX엔진 등 다른 계열사들도 협약을 신청한 상태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수주잔량을 확보한 상태로 조선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