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연극 <그 집 여자>는 가정폭력을 소재로 하는 2인극이다. 특이하게도 무대 위에 가해자인 남편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극 중 내내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막이 오르면 일반 가정집 풍경과 다를 바 없는 무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시어머니는 손주와의 여행 준비에 한창이고, '여자'는 그런 시어머니의 채비를 돕고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대화 도중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여자'의 계획을 눈치챈다. 이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행출발을 지연하는 시어머니와 여행출발을 종용하는 '여자' 간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극은 뒤틀린 가족애가 가정폭력을 묵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맞고 사는 며느리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시어머니와 대화하며 '악인 심판'의 정당성을 가까스로 인정받고, 거사를 치르기 위해 시어머니를 집에서 내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이내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가해자를 핏줄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돈다. 피해자 간 연대는 실패로 돌아가고, 가해자의 폭력을 묵인하는 피해자는 결국 가해자의 조력자가 된다.
결국 극의 고발대상은 가해자가 아닌, 폭력에 침묵하는 우리다. 연출적 측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출가는 무대에서 가해자의 구체적 모습을 지운 대신, 콘크리트 벽을 통해 계속 들려오는 층간 소음을 부각시킨다. 이웃집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층간 소음은 역설적으로 이 집의 사정이 외부에도 이미 알려져 있음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별다른 변화 없이 집안을 내리쬐고만 있는 실내조명은 남 일에 모른척으로 일관하는 무심한 이웃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2인극인 만큼 이 연극은 배우의 연기력에 기대어 가는 측면이 크다. 시어머니 역의 박혜진, '여자' 역의 배우 이지하의 호연이 돋보였다. 박혜진은 끊임 없이 수다를 늘어놓으며 교회생활에 의존하는 중년여성의 이미지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이지하는 맞고 사는 아내답게 피로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일관하면서도 며느리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그녀의 복수시도에 설득력을 더했다. 아들 지훈에 대해 얘기할 때는 얼굴에 옅은 웃음을 띄는 등 디테일한 설정도 잊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계획을 눈치채는 과정이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이난영 작가 특유의 반전은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표면상 가정극 혹은 여성극으로 읽히지만, 가정 폭력을 사회권력의 횡포로 확대해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연극 <그 집 여자>에서 보듯 피해자 간 연대가 실패하고 자기희생의 정신이 실종되는 한 '루시퍼가 루시엘이 되기 위한 심판,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심판'은 계속 미뤄질 듯하다. 2012 창작팩토리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이다.
작 이난영, 연출 박혜선, 출연 박혜진, 이지하, 제작 극단 전망·사개탐사, 무대 하성욱, 조명 황종량, 음악 김철환, 분장 백지영, 소품 서정인, 의상 김미나, 후원 문화체육관광부·명동예술극장, 2월24일까지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