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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천막 안 밝은 세상, 천막 밖을 비추다
떠돌이 동냥치들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다..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입력 : 2012-11-05 오후 4:38:46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한국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이념의 첨예한 대립을 휴전이라는 형식으로 봉인해버린 후 우리 사회는 오늘날까지도 시시각각 뼈 아픈 비용을 치르고 있다.
 
억지로 잠궈둔 역사의 빗장은 사회구성원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맥 없이 풀려나가고 정치, 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전후 62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한국전쟁을 창작소재로 자주 활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은 작가 김은성이 대중 앞에 선보이는 두 번째 역사극이다.
 
김은성에게는 미시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시적인 문제를 사색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세르비아 출신의 작가인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에서 모티프를 딴 작품인 <로풍찬 유랑극장>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에서 힌트를 얻은 전작 <뻘>에서와 마찬가지로 전라남도 벌교 언저리를 맴돈다. 1950년, 한반도에 전쟁터 아닌 곳이 어디 있었겠냐만은 상대적으로 볼 때 작가는 역사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시선을 고정한다.
 
극의 배경은 한국전쟁 발발 하루 전의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 사이의 새재마을이다.
 
극은 여수·순천사건 이후 좌·우의 극심한 대립 속에 빨치산과 토벌대 간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전개되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는 한 유랑극단의 이야기를 담는다. 유랑극단의 여정을 따라 관객도 역사를 관통하며 지나가게 되는데 여기서 관객은 두 가지 감상 포인트를 얻게 된다. 하나는 '연극이라는 매체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본다는 것의 의미'이다.
 
단장 로풍찬이 이끄는 유랑극장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연극 '노민호와 주인애'를 공연한다. '이 천막은 두 시간으로 줄인 천만 년을, 여섯 평으로 좁힌 억만 평을 가리고 있다네. 천막 안에는 천막 밖에서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라는 바람잡이 멘트로 문을 여는 이들의 연극은 '전쟁터나 진배 없는 곳에서 연극을 한다'고 타박하던 마을사람들의 마음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관객은 극중극을 통해 '연극을 보는 나'를 보게 된다. 특히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민호와 주인애'를 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이 장면에서 연출가 부새롬은 무대 뒤쪽에 '노민호와 줄리엣'을 공연하는 로풍찬 유랑극장을 배치하고, 무대 앞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관객석을 향해 앉아 공연을 보게 함으로써 관객들이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끔 만들었다. 
 
아예 연극이라는 매체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연극에 미친 유랑극단 단원인 하가림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나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극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도 그에게서 나온다. 나무 칼을 앞세운 하가림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대목은 한 인물의 죽음을 넘어서서 연극의 죽음으로 읽힌다. 반성과 사색의 여유를 잃은 사회는 결국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깨뜨려버리고 만다.
 
그동안 작가가 탐색해온 '본다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로풍찬 유랑극장>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시동라사>로 대표되는 김은성의 작품세계에서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테마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작가의 치밀한 묘사력 때문에 작품 속 인물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번 <로풍찬 유랑극장>의 경우, 작가 특유의 극사실주의적인 미학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걸죽한 남도 사투리, 온몸이 피로 범벅된 피창갑의 몸 등에서 극대화된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비극의 징후를 읽어내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연우소극장에서 3주 남짓 공연된 이번 작품은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매진사례로 이어졌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대표인 작가의 탄탄한 필력과 극단 상임연출의 안정된 연출력 외에 배우들의 고른 연기력이 더해진 덕분이다. 특히 피창갑 역할을 맡은 배우 허지원의 연기가 단연 눈에 띄었다. 빨갱이 숙청을 부르짖으며 잔악무도한 짓을 일삼던 피창갑이 연극과 배우 옥단미를 통해 자신의 내상을 돌아보게 되고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미세한 심리변화를 허지원은 섬세하지만 분명하게 표현해냈다. 
    
작 김은성, 연출 부새롬, 무대디자인 부새롬, 김다정, 출연 김명기, 강말금, 강기둥, 배선희, 이지현, 선종남, 김신록, 강혜련, 전석찬, 김두진, 허지원, 김두진, 이지혜.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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