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언론인이 사주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용기에도 우열을 둘 수 있다면 ‘MB’나 ‘삼성’을 비난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위험한 일일 수 있다.
표상화 된 정치·자본권력이 손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적이라면 언론사의 대주주는 눈앞에 현존하는 상대이다.
부산일보 노조와 국민일보 노조의 파업 결의에 알 만한 이들의 갈채가 쏟아진 건 그런 이유다.
이 중 부산일보는 사주를 정조준 한 발언에 편집국 간부들까지 목소리를 보탰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50)은 그것이 기자로서 원칙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주가 불편해할 법한 뉴스를 원칙에 따라 보도했고 이 일로 지난 해 11월 이후 연거푸 두 번이나 ‘대기발령’에 처했다.
이 편집국장이 당시 지면 게재를 결정한 기사는 부산일보의 유일주주 정수장학회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들이다.
2011년 11월 18일자 1·2면에 실린 <부산일보 노조,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총선·대선 앞두고 “언론 공정성 확립 필요”>를 필두로 <부산일보 '정수재단 사회환원 투쟁' 갈등 원인은…>, <박근혜, 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정치 꼼수'>, <부산 의원 절반 이상 "박근혜 정수장학회 손떼야">, <정수장학회 역대 이사장·이사 면면 살펴보니> 등이 해를 넘겨 지면에 실렸다.
<정수장학회를 말한다>, <부산일보 제2편집권 독립 운동>, <정수장학회를 공공의 자산으로> 시리즈도 대주주의 심기를 충분히 거스르는 기획물이었다.
갈등의 기원이 된 정수장학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역사적 인식이 필요하다.
발단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의 ‘1962년 부일장학회 강탈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쿠데타 세력의 핵심인 박정희는 부산의 기업가 김지태 씨에게 부산시내 땅 10만 평과 부산일보, 부산일보MBC 주식 등 각종 재산을 ‘헌납’ 받았고 이 가운데 부일장학회의 경우 1982년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한자씩 따와 정수장학회로 재단명을 바꿔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명확하다.
지난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부일장학회 사건에 대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장악 의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이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의 핵심인 언론자유와 사유재산권이 최고 권력자의 자의와 중앙정보부에 의해 중대하게 침해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부산일보 구성원의 목소리는 언론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 이 같은 과오를 벗자는 요구다.
이들은 2004년에도 2007년에도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했다.
핵심은 장학회의 완전한 사회 환원, 그리고 사장추천제 도입이다.
이를 위해 재단 이사회를 ‘친박’ 아닌 인사들로 교체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정수장학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 이 문제에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정호 편집국장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는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부산일보를 언론으로 바로세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측은 이 같은 믿음에 대해 법적 소송은 물론 그의 책상까지 편집국에서 빼버리는 감정적 수를 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회사 앞에 ‘열린편집국장실’을 차려 두달 간 국장 업무를 봤다.
그러다 지난 10일 아예 짐을 꾸려 상경했다.
사주의 부당함을 좀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상경투쟁 3일째를 맞는 12일 오후 그만의 '열린 국장실'이 꾸려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열린편집국장실을 아예 서울로 옮겼다. 각오가 뭔가?
"그때도 지금도 내게 중요한 건 편집권 독립을 완전하게 지탱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단과 부산일보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근본적이고 필수적이다. 작년 11월 이후 회사는 폭압적으로 징계를 내리거나 법적 소송을 제기해왔다. 벌써 10개월째다. 그 과정에서 2개월 정도 열린편집국장실을 부산일보 앞에서 운영했고 취지를 알려왔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서울에 와서 재단과의 단절이나 편집권 독립의 중요성을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은 것이다."
- 기약을 두고 상경한 것인가?
"어떤 시점을 정한 것은 아니다. 추석 전후까지 있을 계획인데 상황을 봐서 계속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 구체적으로 목표 삼는 내용은?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는 차원이 하나고,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다른 하나다. 부산일보는 편집권 독립과 관련한 제도가 잘 마련된 편이다.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조항이 단협에 있고 편집국장 추천제도 있다. 경영진이 이를 어기고 지면에 대해 불필요한 간섭과 지시를 공공연히 하고 있기 때문에 중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상대는 대선 후보다. 어려운 싸움 아닌가?
"언제 어떻게 실현될 것이라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다. ‘편집권 독립’은 언론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희망이다. 언젠가는 돼야 하고,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워낙 세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건 고려하지 않고 있다."
- 부산일보는 2005년 전후로도 재단과 관계 재정립을 요구한 적 있지만 이번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이런저런 말들도 오가는 것 같다.
"우린 언론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무슨 선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표를 얻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왜곡된 재단과의 문제를 해결해 부산일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대선과 맞닥뜨려 있을 뿐이지 계속해서 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이를테면 사장 선임 부분이 한 예인데 노조에서는 재단 이사회 개편이나 사추위 구성 등을 공식요구 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정수재단의 기준은 사장으로서 자질과 능력 보다 박정희, 박근혜에 대한 충성도를 먼저 따졌기 때문이다. 충성도 문제의 당위성은 차치하더라도 사장이라면 회사 발전을 위해 능력과 자질이 고려돼야 하는데 박근혜 쪽과 연결성만 있으면 곤란하지 않다는 식이다. 거기에 대고 사원들 의사를 반영하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지금 노조위원장이 4년 동안 일관되게 매달린 문제이다."
-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에서 이미 손을 뗐다는 입장인데.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법적으로 관계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등기법인상 관계없긴 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관계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최필립 이사장이 누군가. 그 사람이 박근혜 후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우리 공주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박 후보가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관계없다고 하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얼마 전 한 어르신이 한 이야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재단인데 어떻게 ‘정수’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느냐고 하더라. 진보니 뭐니 여기엔 어떤 이념도 들어가 있지 않다. 이건 그냥 빼앗은 거다. 뺏은 건 돌려주는 게 맞고 재단은 본래 사회를 위해 쓰이는 것이니 취지대로 그렇게 하면 된다."
- 사측의 징계 이유가 ‘야당 편향 보도’와 그로 인한 ‘판매 부수 급감’인데.
"편향성이라는 건 추상적 개념이다. 논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면 거꾸로 사측과 재단과의 관계가 편향적이다. 경영진은 재단이 임명하는 사람들이니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재단은 또 박근혜 후보와 밀접한 관계 아닌가. 그런 편향된 기준을 갖고 거꾸로 내게 편향됐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지면을 통해서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면에 간섭하는 것 아닌가. 편향성은 우리 편집국 종사자들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 거꾸로 사측이 들어야 할 이야기다. 부수가 떨어진다는 것도 그렇다. 신문 구독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럿 아닌가.
신문이 총 몇 페이지인가, 컬러 면은 얼마나 있나,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는가 하는 다양한 변수가 구독을 결정한다. 사측이 문제 삼는 정수재단 기사가 전체 지면에서 얼마나 나갔다고 저러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 부수를 문제 삼지만 구체적 근거도 없다. 회사 내부용으로 이번 투쟁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원들에게 협박하는 것밖에 안 된다.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근거는 없다. 지금 경영진 논리가 ‘부산은 새누리당 도시다, 엉뚱한 기사 나가면 독자들 떨어져 나간다’는 것인데 부산은 해방 이후 용광로 같은 도시로 컸다. 수치로 따진다면 야당 지지도가 40%에 육박한다. 70년대 섬유·신발산업이 융성하면서 호남사람들까지 많이 모여들었다. 그만큼 열린 곳이다.
사측 주장대로 형평성을 이야기하자면 여야 비율을 반반 정도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큰 문제는 사측의 그런 주장에 정치적 욕심, 사적 욕심이 묻어있다는 점이다."
- 보통 사주와의 싸움에서 회사 간부들은 사측 편에 서게 마련이라 부산일보를 바라보는 눈이 특별한 것 같다. 언론인터뷰에서 ‘민주화 세례를 받은 첫 세대’라는 표현도 있던데 그 점이 일련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 될까?
"88년도에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는데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막 시작될 무렵이다. 당시 부산일보도 파업을 통해 편집권 독립을 얻었고 나 역시 그로 인해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쓸 것 쓰고 견제할 것 견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다. 투사가 아니라 난 단지 기자다. 편집국장으로서 책임질 일 한 것이다.
어떤 게 기사로 나가는 게 ‘맞다, 안 맞다’ 판단하는 것이 내 일이고 문제가 커진 것은 회사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내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장이 지면에서 특정기사를 빼라고 했기 때문이다. 신문지면은 내가 결정할 문제이고 그 기사를 빼는 것도 난 부당하다고 봤다. 거기서 시작된 싸움이다.
난 할 일 한 건데 회사가 나를 쫓아냈고 난 그때마다 대응을 한 것뿐이다.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소송 낸 것이고, 업무를 계속해야 하니까 회사 앞에서 농성을 시도한 것이고….
국장 일을 충실히 한 것밖에 없다. 무슨 공금을 횡령 한 것도 아니고 기사가 틀린 것도 아닌데 쫓아낸다고 집에 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 편집국 부장들도 같이 징계를 받은 상태다.
"정치·사회·편집부장, 핵심인력을 골라서 조치했다. 그 부장들도 인사 내용을 따르지 않고 있다. 문화부 선임기자로 발령 났지만 그쪽으로 안 가고 국제부장으로 발령 냈지만 그 파트에 가지 않고 꿋꿋하게 계속 일을 보고 있다. 부장들에게 징계가 떨어지자 평기자들이 축하쇼를 해줬다. 난 그런 것이 부산일보 문화라고 본다. 사장은 법과 질서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기자들은 위축되지 않는다. 그런 환경 때문에 내가 싸울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선별적으로 압력을 넣으면서 포섭할 수 있는데, 인사조치가 그런 것인데, 당사자들이 가지도 않고 지시도 따르지 않고 있다. 경영진의 공식적 조치가 안 먹히는 상황이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열린 편집국장실이 혼자 이룬 게 아니라는 점을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더불어 그 같은 내부 역량으로 인해 현재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반드시 따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편집국장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회의도 열고 지시도 하고 결재 처리 같은 행정업무도 같이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부장과 기자들 협조가 아니었으면 열린편집국장실 운영을 못했을 것이란 말이다. 대기발령 상황인데 사람들이 외면했다면 나 역시 할 말 없고 아무 일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지하고 따라줬다. 정수장학회 기사도 같이 만든 것이다. 도움과 동의와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 고맙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