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피 흘리는 교통사고 피해자가 있다. 이 피해자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은 당장의 출혈을 막으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몸안에서 생긴 출혈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현상만 보고 거즈를 갖다대는 아마추어가 아닌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 출혈의 원인을 진단하는 의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전기료 얘기다.
정부와 한전은 한전의 만성적자라는 결과만 놓고 기계적인 해석으로 전기료 인상이 답인것처럼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은 원가 이하라는 전기료 구조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기료 체계가 달라진 소비구조와 패턴을 반영하지 못해 생긴 탓이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경부하요금과 심야전력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 제도들은 유휴 기저발전 설비를 이용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겨울철 경부하 수요가 기저발전용량을 초과하면서 다른 발전을 추가로 기동하게 됐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셈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체계를 고쳐나갈 방법은 여러 해 전부터 거론돼왔다.
지난 2009년 지식경제부가 제시한 '고유가시대를 대비한 에너지가격구조 개선방안'에 따르면 올해 1월에는 전압별로 요금을 통합하기로 돼 있었다. 세계에서 전기료 체계를 용도별로 구분한 나라는 한국 뿐이다. 연료비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연료비연동제도 보류상태다. 제안된 정책들은 '로드맵'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바로 어제 한전이 이사회를 거쳐 인상률을 결정했다. 계획안은 살짝 달라졌다. 당초 13.1% 인상을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10.7%를 올리고 6.1%는 연료비연동제로 보전하겠다고 한다.
인상을 요구하는 한전의 자세가 전례없이 강경해졌다는 후문도 들린다. 한전 주주들의 소송탓일 것이다. 정부는 한전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물가상승을 우려해 어느 수준 이상은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 몇달째 이어온 한전과 정부의 핑퐁게임에서 정책은 실종됐고 숫자놀음만 남았다.
언제까지 무의미한 숫자놀음을 계속해야하는 걸까.
정부는 다른 제도와 법규에 대해서는 선진국·OECD 수준으로 개방하고 바꿔야한다면서도 전력체계만큼은 전근대적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물가안정'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이 모든 소란을 잠재우려한다. 항상 반복되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는 건지 답답하다.
어차피 전기요금 결정 때 정부의 정책적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면, 정부가 그 정책적 영향력을 전기료 체계 개선에도 발휘해주길 바란다. 이번에도 그냥 이렇게 한 고비 넘기고 보자는 정부의 행태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것 아닐까?
전기료 인상이 초래할 물가상승보다 더 무서운 건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도 못본 채 하는 정부의 '무원칙'과 '무사안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