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시청각 프로젝트 GENER8ION이 스웨덴 래퍼 Yung Lean과 함께 발매한 더블 싱글 STORM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이미지=GENE8ION 공식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다 보면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장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가만히 서 있고,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이는 영상인데요. 등장인물을 바꾼 패러디부터 결혼식 영상까지 수많은 버전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인공지능(AI) 프롬프트로 만들어진 유행 영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원본은 GENER8ION과 영 린(Yung Lean)의 뮤직비디오 'STORM'이었습니다.
원작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상이 아닙니다. 로맹 가브라스 감독이 연출하고 실제 댄서들이 참여했습니다. 댄서를 뽑는 데만 두 달이 걸렸고, 안무를 사흘간 연습한 뒤 16㎜ 필름으로 약 15번의 시도 끝에 긴 원테이크 장면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영상은 디스토피아적인 학교를 배경으로 폭력과 위협, 불안 속에 놓인 소년들이 혼란 속에서도 함께 버티고 저항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AI 패러디에서는 이런 맥락이 대부분 사라집니다. 카메라 움직임과 안무는 똑같지만 그 자리에 유명인이나 캐릭터가 들어가면서 원작의 서사는 빠지고 '형식'만 남습니다.
처음에는 감독도 이런 AI 패러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영상이 끝없이 쏟아지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브라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영상에 엄청난 노력을 쏟은 사람들이 떠올라 슬펐다"며 이런 유행은 좋은 작품조차 시시해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원작이 하나의 '작품'에서 복제 가능한 '템플릿'이 되는 순간입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A2O LITE의 'NEON'도 비슷합니다. 원래 안무 영상 속 인물을 유명인이나 영화·드라마 속 인물로 바꾼 AI 영상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전문적인 영상 편집 기술이 없어도 사진 몇 장만 있으면 비슷한 영상을 만들 수 있고, 제작 방법과 프롬프트까지 빠르게 공유됩니다.
물론 이런 유행이 원작에는 강력한 홍보가 되기도 합니다. AI 밈을 먼저 보고 노래나 원본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패러디이고, 어디부터가 복제일까요. 법도 이 경계를 명쾌하게 잘라주지는 못합니다. 저작권은 일반적으로 아이디어나 스타일 자체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보호합니다. 단순히 비슷한 분위기나 기법을 썼다고 곧바로 침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기존 작품의 창작적 표현까지 유사하게 가져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경계를 정하지 못하는 사이 AI 기술은 훨씬 더 고도화되고 영상 복제는 더 빨라질 겁니다. 수개월 동안 사람을 모으고, 호흡을 맞추고, 여러 번 다시 찍어 완성한 장면이 이제는 몇 번의 클릭으로 끝없이 복제됩니다. 처음엔 신기했던 영상도 비슷한 패러디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또 이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AI가 제작비와 기술의 문턱을 낮춘 것은 분명하지만 복제가 쉬워질수록 원작이 가진 의미와 맥락은 더 쉽게 퇴색되는 것 같습니다. 'STORM'이 말하려 했던 불안과 연대는 사라지고, 익숙한 몇 초짜리 움직임만 남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