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해킹입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해킹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신과 제조, 금융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이버 침해 사고가 이어지면서, 개인정보 유출은 이제 특정 기업이나 일부 이용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습니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사이버보안 대응 체계를 비판하면서 "오죽했으면 털린 민족이라는 오명"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이 더욱 걱정스러운 이유는 각각의 사고가 독립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기업에서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다른 곳에서는 주소나 이용 내역이 유출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정보만 놓고 보면 개인을 특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여러 경로에서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완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고 의심스러운 문자나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는 등 기본적인 보안 수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용하는 기업의 서버가 해킹당하거나 보관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까지 개인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개인정보를 보관하는 기업과 사이버 침해에 대응하는 국가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사이버 침해 대응의 핵심 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전산 인프라 노후화 문제까지 지적됐습니다.
인터넷침해대응센터의 전산 시스템 2065개 가운데 50.7%가 취득한 지 5년 이상 지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장비는 제조사의 기술 지원이 종료돼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물론 장비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났다고 해서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버 공격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핵심 대응 기관의 장비가 노후화되고 유지보수마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습니다.
특히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떠오르면서 방어체계에도 최신 AI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기존 전산 인프라가 노후화돼 있다면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격자는 AI를 활용해 취약점을 더 빠르게 탐색하고 공격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를 막아야 할 국가기관은 기존 장비의 노후화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격과 방어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개인정보 유출은 개인이 조금 더 조심한다고 완전히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내가 맡긴 정보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유출될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유출된 정보가 다른 정보와 결합해 언제 다시 악용될지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업과 국가기관에 개인정보를 맡기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게 관리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킹 사고는 반복되고 이를 막아야 할 대응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공격이 점점 고도화되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개인에게 보안 수칙을 지키라고 당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보안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의 대응 인프라도 그에 걸맞게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개인정보를 맡긴 우리의 불안감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해킹 공격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지=뉴시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