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전화를 잘 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도 전화번호를 누르기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조금 더 자란 세대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로 연락을 주고받는 게 익숙합니다. 처음 알게 된 사람과도 전화번호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전화의 자리를 대신할 수단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문자메시지에서 카카오톡으로, 다시 인스타그램 DM과 각종 메신저로 소통 방식이 옮겨갔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식당을 예약하고 주문이나 문의까지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전화번호를 눌러 누군가와 직접 통화하는 일은 앞으로 더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전화번호의 존재감은 여전합니다. 온라인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도,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만납니다. 문자로 인증번호를 받거나 통신사 본인확인을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합니다. 이동통신3사의 본인인증 공동브랜드 패스는 현재 이용자가 2600만명, 적용 회원사가 3만곳에 달합니다. 한 달 인증 건수만 1억2000만건입니다. 전화번호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한 숫자를 넘어 온라인에서 '내가 나임'을 확인하는 열쇠가 된 셈입니다.
물론 변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밀번호나 문자 인증 대신 지문이나 얼굴, 기기 잠금으로 로그인하는 패스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FIDO얼라이언스는 올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패스키가 약 50억개에 이른다고 추산했습니다. 조사 대상자의 75%는 적어도 하나의 계정에서 패스키를 활성화했다고 답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전화번호에 기대지 않고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각종 서비스와 본인확인 체계에 연결돼 온 전화번호가 당장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역할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전화번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번호였습니다. 지금은 사람과 서비스를 연결하고, 때로는 현실의 나와 디지털 세상의 나를 이어줍니다.
AI가 대신 전화하고 예약하는 시대. 어쩌면 전화번호에서 가장 먼저 희미해지는 기능은 역설적으로 전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