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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프라임] 강한 자가 아닌 살아남는 지혜
해파리는 왜 수억 년을 살아남았을까
입력 : 2026-10-0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바다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을 하나요. 거대한 고래나 힘찬 파도,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바다의 생명과학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의외의 존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해파리입니다.
 
투명한 몸으로 물속을 유영하고, 뇌도 심장도 뼈도 없는 생명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연약해 보이지만, 해파리는 수억 년의 시간을 견뎌내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립청주해양과학관 개관일인 지난달 29일 해양과학관 내 전시관에는 해파리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구 표면의 약 70%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해파리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우산처럼 펼쳐지는 종 모양의 몸체 아래로 촉수가 늘어지고,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신경망을 통해 주변의 자극을 감지하며 움직임을 조절합니다.
 
수축했다가 다시 펴지는 종 모양의 몸은 해파리의 이동 장치이자 생존 장치입니다. 물을 아래쪽으로 밀어내며 몸을 위로 띄우고, 물의 흐름을 타고 이동합니다. 어떤 해파리는 방향을 바꾸며 헤엄칠 수 있지만, 상당수는 바닷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 움직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몸짓 속에도 오랜 진화의 시간이 녹아 있는 셈입니다.
 
촉수 표면에는 자극을 받으면 빠르게 발사되는 자포세포가 있습니다. 해파리가 먹이를 잡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핵심 무기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단순한 세포 구조처럼 보이지만, 외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교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국립청주해양과학관 개관일인 지난달 29일 해양과학관 내 전시관에는 해파리 사진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해파리의 투명함도 단순한 특징이 아닙니다.
 
해파리 몸의 95% 이상은 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한 몸은 바다 한가운데서 천적의 시선을 피하는 생존 전략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파리가 연약한 존재일까요. 단순함과 투명함, 바닷물의 흐름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약 5억 년에 이르는 생존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흔히 여름철 해파리 대발생이 피해를 주면서 해파리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왔지만, 해파리 역시 바다 생태계를 이루는 한 구성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해파리가 바다의 탄소순환에도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해파리가 대량 발생한 뒤 생을 마치면 일부 개체는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파리 몸속의 탄소가 심해로 이동하고,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해파리에서 얻은 콜라겐은 새로운 의료소재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인공피부를 비롯해 연골·뼈를 지지하는 소재, 수술용 재료 등으로 활용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죠. 바다에서 골칫거리처럼 보였던 생물이 오히려 인간의 미래 기술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립청주해양과학관 개관일인 지난달 29일 해양과학관 내 전시관에는 해파리가 전시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해파리의 생체 원리를 본뜬 기술도 주목할 만합니다. 물속에서 프로펠러나 큰 소음을 사용하지 않고 해파리처럼 움직이며 해양생태계를 관찰하는 로봇이 대표적입니다. 자연이 오랜 시간 만들어온 움직임의 원리를 인간의 기술로 다시 구현하는 시도입니다.
 
결국 해파리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강해야 살아남는다고 믿습니다. 빨라야 하고, 앞서야 하며,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불의 발견과 고대 문명을 거쳐 탄소 기반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문명을 일궈냈습니다. 영국이 1차, 미국이 2·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세계사를 이끄는 동안 대한민국은 식민지와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문명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 혁명이 결합한 ‘녹색 문명’이라는 세 번째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과거의 추격자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의 이번 전환기는 위기이자 거대한 기회 앞에 서있습니다. 수억 년의 바다가 해파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어쩌면 하나일 것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가장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국립청주해양과학관 개관일인 지난달 29일 해양과학관 내 전시관에는 해파리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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