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영화가 뭐길래
입력 : 2026-09-30 오후 9:27:49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영화 한 편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국민의힘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비판에 나섰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를 이른바 '좌파 영화'로 규정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역지사지해도 되겠느냐'는 취지의 주장도 나옵니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 어디까지 상상력을 허용할 수 있는지는 분명 따져볼 문제입니다. 영화라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뒤집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과 인물을 다루면서 허구를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거나,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논란이 큰 현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관객 가운데 상당수는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을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작진 역시 작품의 허구적 설정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었는지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영화의 내용 하나하나를 놓고 정쟁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정기국회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국회가 다뤄야 할 현안은 산적해 있습니다. 민생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경제와 부동산, 노동과 복지, 외교·안보 등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이 국회의 논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당이 영화 한 편의 역사적 묘사를 놓고 당 차원의 공세를 확대한다면 국민의 눈에는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해 보이겠습니까.
 
정당에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역할도 있지만, 동시에 국정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영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역사학계나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논쟁을 이어가면 됩니다. 굳이 정치권이 앞장서 영화 관람 여부나 작품의 정치적 성격을 놓고 진영 대결을 키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인 역지사지 논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한 영화적 묘사가 부당하다면 그것 자체를 구체적으로 비판하면 됩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그분을 소재로 반대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묻는 순간 논쟁은 역사적 사실의 문제에서 정치적 감정싸움으로 옮겨가기 쉽습니다.
 
지난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 예매 키오스크 화면에 '암살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 속 허구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현실의 갈등을 재현하고, 과거의 인물을 다시 불러내 진영 간 대결의 소재로 삼을 때입니다. 국민이 국회에 기대하는 것은 영화평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삶을 바꾸고 불편을 덜어줄 법과 정책에 대한 치열한 논쟁입니다.
 
역사는 역사대로 제대로 기록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평가하면 됩니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그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명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정기국회 한복판에서 정치권이 정말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장면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영화가 뭐길래, 국회가 영화관이 돼야 하겠습니까.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동지훈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