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는 모델을 다시 학습하는 데 최소 14일, 약 300시간 이상의 생산 공정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최대 50시간이면 됩니다.”
지난 14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AI 토크 콘서트 2026’에서 유정선 LG이노텍 인공지능 전환(AX) 담당이 소개한 사례다. 공정 조건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약 85% 줄였다는 설명이다.
지난 14일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AI 토크 콘서트 2026’ 에서 딥다이브 세션1이 진행되고 있다.(사진=LG)
기업들이 인공지능(AI)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하다. 사람이 며칠씩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야 했던 일을 AI는 몇 시간 만에 끝낸다. 반복 업무를 줄이는 수준을 넘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상 징후를 찾고, 필요한 판단까지 대신하는 단계로 영역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최근 산업계가 앞다퉈 이야기하는 ‘에이전틱 AI’가 그것이다. 기존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을 내놓는 데 그쳤다면, 에이전틱 AI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찾고 외부 프로그램을 이용해 행동까지 수행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AI가 ‘업무를 돕는 도구’에서 ‘업무를 맡길 수 있는 존재’로 바뀌는 셈이다.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좋은 것인가 하면 의문이 남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해의 규모다. AI에게 일을 더 많이 맡길수록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챗봇이 틀린 답을 내놓으면 사람이 고치면 된다. 반면 회사 시스템에 접근 권한을 가진 AI 에이전트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일을 삭제하거나 잘못된 거래를 실행하고, 외부 시스템에 허가되지 않은 접근을 시도하는 등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이런 위험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앤스로픽은 최근 기업공개 관련 서류에서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고객 시스템에 깊숙이 접근한 상태에서 잘못 행동할 경우 무단 금융거래나 데이터 손실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AI가 일을 잘할수록 사람은 스스로 생각할 이유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에 업무를 맡기면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람이 직접 자료를 찾고 비교하며 판단할 때는 무엇이 맞고 틀린지 깊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AI가 검색부터 분석, 판단, 실행까지 대신하면 사람에게 남는 역할은 최종 결과를 승인하는 것뿐이다.
최근 연구에서도 이런 ‘인지적 외주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정답률은 높아지고 정신적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판단 과정까지 AI에 넘길 경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사고를 돕는 수준을 넘어 사고를 ‘대체’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다.
물론 기업에 AI 도입을 늦추라고 할 수는 없다. 300시간 걸리던 일을 50시간으로 줄일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할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쟁사가 AI를 활용해 생산성과 비용을 개선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AI를 도입할 것이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AI에게 어디까지 맡길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업무 속도를 높이는 것과 판단 자체를 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이제 기업은 사람에게 남겨둬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보다 AI가 먼저 판단하고 인간이 이를 뒤따라 승인하는 ‘사고의 역전’이 일상화된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생산성이 높아진 그 뒤에 남는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함께 따져봐야 할 때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