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민주주의에는 늘 갈등이 따라붙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의견이 처음부터 같다면 갈등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에서는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그만큼 갈등도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법을 다시 들여다보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거친 뒤 만들어진 합의가 그렇지 않은 합의보다 더 단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은 민주주의의 부작용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공소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은 본문과 무관. (사진=뉴시스)
문제는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최근 정치권을 바라보면 갈등이 지나치게 소모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충돌하고, 입법부에서는 여·야가 사안마다 첨예하게 맞섭니다. 여기에 같은 진영 안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배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갈등이 커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때로 첨예한 대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틀렸다는 전제가 자리 잡는 순간 갈등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갈등의 목적이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논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를 이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하고, 그 가운데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있습니다. 갈등이 합의를 향한 과정이 아니라 승패를 가르는 수단으로 변한다면 갈등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갈등에는 출구가 필요합니다.
정치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의견에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자신의 주장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상대가 내일의 협력자가 될 수 있고, 지금의 소수 의견이 훗날 다수의 해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쪽일수록 갈등을 다루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행정부든 사법부든 입법부든 자신의 권한과 논리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한이 있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상대의 목소리를 얼마나 배제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의견과 충돌하면서도 최종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의해 확인됩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갈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갈등을 통해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사회가 민주주의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갈등이 아무리 심해져도 서로 출구 하나쯤은 남겨둬야 합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도 수정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그래야 격렬한 논쟁도 결국 합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끝까지 대화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도 결국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끝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갈등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잘 다뤄야 할 민주주의의 자산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느냐가 아니라, 그 갈등을 통해 얼마나 나은 합의에 도달했느냐일 것입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