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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프라임] 경계를 메우다
지도를 바꾼 인류의 궤적
입력 : 2026-09-22 오후 6:21:41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이번 글은 판을 크게 펼쳐볼까. 얼마 전 간척 현장을 다녀왔는데, 넓은 바다를 메운 간척의 서사가 자못 다채롭더라고.”
 
뱃길 역사에만 갇혀 있기보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간척의 서사를 다루자는 심경으로 매번 쉽지 않은 기획안을 만져봅니다. 1000년의 시간을 훌쩍 넘나드는 간척의 역사를 한 그릇에 담아내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요. 
 
현장과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며 주저하길 수차례, 이번엔 마음을 달리 먹고 간척의 역사를 꺼내 듭니다. 고려 시대 강화도 갯벌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죠. 얼마 전 간척 현장을 직접 다녀온 터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2026년 9월10일 새만금로에 위치한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서 오욱진 새만금간척박물관 학예연구실 실장이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에게 간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도대체 간척이라는 이 거대한 서사가 무엇이기에 마음을 사로잡는 걸까요. 갯벌과 바다를 흙으로 메워 육지로 만든 간척은 인간이 자연의 조건에 순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과 기술을 통해 삶의 공간을 넓혀온 가장 드라마틱한 흔적입니다.   
 
미지의 바다를 향해 둑을 쌓아 올렸던 인류의 첫걸음을 되짚어보면 간척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명사죠. 한반도에서 간척을 논하면 무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330년에 처음 축조된 김제 벽골제는 한국 최대 규모의 고대 저수지로, 나뭇가지 위에 흙을 다져 토대를 강화하는 ‘부엽공법’을 활용해 치수와 수리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고려 시대인 1232년에는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며 불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본격적인 해안 간척이 시작됐죠. 조선 시대를 거치며 국가 재정과 농민 생활 안정을 위한 터전이었던 갯벌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잔혹한 수탈의 현장으로 변질된 역사적 아픔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1918년 산미증식계획 아래 군산과 호남평야 일대의 갯벌이 대규모로 개간됐고 그곳에서 생산된 쌀은 일본으로 반출됐습니다. 수리조합의 횡포에 맞서 소작쟁의를 벌였던 농민들의 눈물겨운 저항은 간척이 지닌 뼈아픈 역사적 단면입니다.   
 
광복 이후의 간척은 민족의 생존과 국가 재건의 상징이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보릿고개’의 극심한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남해안 개간에 나섰고,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해안가를 메워 거대한 산업단지를 조성했습니다. 
 
 
2026년 9월10일 새만금로에 위치한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 간척사와 관련한 문화재가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그리고 1991년 첫 삽을 뜬 새만금 간척사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간척은 농업 중심에서 산업, 관광, 국제 업무를 아우르는 미래형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세계로 돌려볼까요. 간척은 국가의 흥망과 도시 성장을 이끈 역동적인 무대였습니다. 국토의 상당수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풍차를 도입해 약 6700km²의 바다를 메우는 자위더르해 사업을 성공시키며 “세상은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사람이 만들었다”는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2세의 영토 확장부터 나치 독일 시기의 체제 선전에 이르기까지 간척이 국가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네바강의 늪지대를 메워 ‘유럽으로 난 창’이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간척은 근대화의 열쇠였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이 됐고 연해주의 척박한 습지를 개간한 고려인들은 불굴의 생명력을 보여줬습니다.
 
작고 좁은 해안선에서 출발한 홍콩과 싱가포르 역시 지속적인 간척을 통해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의 허브로 도약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끊임없이 해안을 바꾸듯, 간척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새로운 지형을 그려온 과정입니다. 
 
때로는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때로는 탐욕과 수탈의 현장으로, 그리고 이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아내는 담론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바다와 갯벌 위에 그려진 수많은 궤적을 짚어보며, 우리는 지도를 바꾼 인간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절제, 그리고 명징한 지혜를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2026년 9월10일 새만금로에 위치한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에 간척지 그림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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