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의 단편 소설 ‘신의 90억 가지 이름’에는 우주의 진리를 좇는 티베트 승려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의 모든 이름을 종이에 적어내면 인류의 궁극적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 손으로 쓰면 1만5000년이 걸릴 이 장구한 작업을 위해 승려들은 최신 ‘슈퍼컴퓨터’를 도입한다. 기계가 밤낮없이 연산해 단 100일 만에 마지막 이름을 출력해 낸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고요하게 꺼지기 시작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끝에 마주한 것은 위대한 성취가 아니라, 더 이상 탐구할 것이 남지 않은 세계의 ‘종말’이었다.
AI가 완벽한 정답을 찾아내면서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꺼져가는 별로 형상화했다. (이미지=챗GPT)
지난 8일 오픈AI가 수학계 7대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해법을 찾아냈다는 소식에 학계가 들썩였다. 바람의 궤적이나 거센 물결처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유체의 무질서를 수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이 문제는, 아주 작은 변수에도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탓에 장장 200년 동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다. 수많은 천재들이 평생을 바치고도 닿지 못했던 그 아득한 정답의 문을 AI가 열어젖혔다. 막대한 에이전트와 컴퓨팅 자원을 동원해 이 철옹성 같던 난제를 단숨에 격파한 압도적 연산력에 세상이 환호했다. 물론 우려도 교차했다. 기계가 무심하게 찍어낸 매끄러운 정답 앞에 ‘지적 허무주의’라는 그림자가 드리운 탓이다.
학문과 진보의 본질은 단순히 빈칸에 들어갈 ‘정답’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난제는 우리가 안다고 믿는 세계의 끝자락에서 미지의 어둠을 비추는 등대와 같다. 그 경계에서 숱한 실패를 견디며 고뇌하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인류의 지평을 넓혀온 동력이다. ‘연산 토큰’만 무한하다면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다는 맹신은,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호기심을 서서히 말라 죽게 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와 다리오 아모데이, 미국의 정치권까지 가세한 작금의 속도조절론은 단순한 ‘기술 공포증’이 아니다. 기계가 주는 ‘정답’의 달콤함에 취해 ‘질문하는 법’을 잊지 않으려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질문을 던지는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 채, 기계가 즉각적으로 뱉어내는 결괏값만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세계는 별이 꺼진 우주만큼이나 캄캄하다. 압도적인 연산력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찬란하고도 텅 빈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 뼈아프게 되물어야 할 시간이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