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중국 상하이는 기억 속 모습과 꽤 달라져 있었습니다. 거리와 상업시설은 한층 정돈됐고,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는 이미 생활의 기본이 됐습니다. 택시 호출부터 음식 주문, 각종 예약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모습은 일상에서 ‘아날로그’가 빠르게 사라졌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만 이 정도입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술 산업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더 빠릅니다.
반도체가 대표적입니다. SMIC와 화홍반도체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파운드리 경쟁력을 키웠고, AI 반도체 기업 캠브리콘도 미국의 대중국 규제로 생긴 시장의 빈틈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딥시크와 유니트리 등 이른바 ‘항저우 6룡’도 중국 기술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줍니다. 특히 메모리에서는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를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한·중 기술격차를 HBM 3년, D램 2년, 낸드플래시 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CXMT는 HBM3E를 테스트 중이며 이르면 내년 이를 탑재한 제품 출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세대 차이는 하나에 불과합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성장 방식의 변화입니다. 과거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정부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기술을 축적하는 단계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CXMT와 YMTC는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과 수익성을 끌어올리며 자체 투자 여력을 확보했고, 이제 HBM과 첨단 패키징 같은 고부가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내수 보호막 안에서 성장하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검증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CXMT의 HBM은 초기 수율이 아직 낮고, 대량생산 능력과 글로벌 고객 인증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이 앞섭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위를 영구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D램 시장에서 일본에 크게 뒤졌지만 대규모 투자와 기술 축적을 거쳐 결국 세계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중국이라고 같은 길을 걷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수율과 양산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첨단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전문인력까지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려야 합니다. 중국이 이미 내수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자로 올라서고 있는 만큼, 과거의 우위를 전제로 한 대응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던 경험이 있었듯 중국의 추격 역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중국을 여전히 ‘값싼 추격자’로 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합니다.
CXMT 메모리 반도체.(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