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쿵 쿵쿵 팍.
심장의 고동처럼 묵직한 드럼 소리가 침묵을 깨며 경쾌한 고백이 시작됩니다. 베로니카 베넷의 스모키한 음색은 ‘Be My Baby’를 간청합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묻어나는 노래입니다.
그 간절함은 여전히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죠. 지금의 한국경제가 그렇습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속도로 성장하기 어려운 경제, 빠르게 늙어가는 인구구조,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경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붙잡아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첫 편성인 ‘2027년도 예산안’이 바로 그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까지 늘리고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미래산업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죠.
내세운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적극적인 재정투자로 성장잠재력을 되살리고 성장의 과실을 국민 모두에게 확산시키겠다는 포부입니다.
8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27년 예산안 당정협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보다 29.7% 늘렸습니다. 반도체 특별회계를 비롯해 프론티어급 AI, 피지컬AI, 데이터센터, 전력·용수 등 국가 차원의 산업기반에 투자가 집중돼 있습니다.
정부가 저성장의 돌파구를 첨단산업과 기술혁신에서 찾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AI 전환이 본격화되는 향후 2~3년이 국가 경쟁력의 방향을 바꿀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장에 투자하는 것과 성장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평가는 냉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을 볼까요. 이 예산은 전년보다 24조6000억원 늘어난 289조원 규모입니다. 청년미래적금, 공공임대주택, 소상공인 지원,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민생대책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다만, 29.7% 증가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와 달리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9.3% 증가에 그치고 있습니다. 복지를 외면한 예산은 아니지만 성장에 비해 분배에 더 강한 의지를 보여준 예산이라고 말하기도 사실상 어렵죠.
한국경제의 문제는 성장률 하나에만 있지 않습니다. 반도체와 전통 제조업,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격차가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 첨단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더라도 그 성과가 일부 기업과 고숙련 인력에 집중된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9월2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래서 AI와 반도체에 투자한 돈이 누구의 일자리와 소득으로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청년 대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정부는 일자리와 훈련, 주거와 자산형성, 문화생활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공공임대주택 2만호 공급과 청년미래적금 확대는 분명 의미가 있겠죠.
안정적인 일자리와 감당 가능한 주거, 그리고 자신의 노동이 미래의 소득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지방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우대 사업과 지방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방향엔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지방소멸은 시설 하나를 더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머물고 기업이 투자하고 청년이 일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은 성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온기가 청년 취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지방 일자리, 취약계층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Be My Baby’의 간절함이 사랑을 얻기 위한 고백이라면 2027년 예산의 간절함은 미래를 붙잡기 위한 희망고문일까요. 성장 그 자체인가, 아니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성장인가. 2027년 예산은 1년 뒤 국민의 삶에서 확인될 것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 안전산업박람회'가 열린 9월2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정찰 등 다목적 4족 보행로봇이 시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