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은행 예금은 투자자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찾아 증시나 다른 투자처로 돈이 움직이는 '머니무브'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데요.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은행 정기예금으로 다시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겁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최근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950조원을 밑돌았지만 7월 한 달에만 30조원 넘게 늘어난 데 이어 이달에도 증가세가 이어졌습니다.
반대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어 증시 대기자금의 성격을 갖는 요구불예금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자금이 정기예금으로 옮겨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투자처를 찾던 시중자금 일부가 확정금리를 주는 예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돈의 방향을 돌려놓은 건 금리와 증시입니다. 최근 코스피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건데요. 반대로 예금 금리는 오르면서 선호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27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p) 올렸습니다. 두 달 연속 인상입니다. 기준금리가 다시 3%대로 올라오면서 은행 예금금리 역시 추가로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미 주요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연 3%대 초반까지 올라왔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반가운 흐름입니다. 예금이 늘어나면 대출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도 풍부해집니다. 특히 앞으로 기업대출을 확대하려면 안정적인 수신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예금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이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도 늘어나는 만큼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앞으로 돈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는 금리와 증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증시 변동성까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은행에서 확정금리를 받으려는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한때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손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금리가 다시 오르자 1000조원이 넘는 돈이 정기예금에 쌓였습니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익숙한 은행 통장이 다시 투자자들의 선택지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