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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의 딜레마
입력 : 2026-08-20 오후 8:20:02
주택 공급 확대를 둘러싸고 여야의 공수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와 용산공원 고밀도 개발에 속도를 내는 정부와 여당의 행보는 무척이나 역설적입니다. 과거 보수 정권의 난개발 정책을 거세게 비판하며 '녹지 보존'을 전면에 내세웠던 진보 진영이, 이제는 집값 안정이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스스로 오랜 대원칙을 허무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는 여권에 깊은 정책적 딜레마를 안기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가 용산공원을 국민의 생태 공간으로 지정한 이후, 문재인정부를 거치며 20년간 공고히 이어온 환경 보존의 가치를 현 정부가 스스로 깨뜨려야 하는 모순에 직면한 것입니다. 당장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여권 내부에서조차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여당의 이러한 조급한 무리수는 야당인 국민의힘에 아주 좋은 정치적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과거 규제 완화와 대규모 개발에 앞장섰던 보수 진영이, 이제는 도리어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녹지 보존이 의무"라며 정부의 드라이브에 매섭게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부동산 민심과 공급 압박에 쫓겨 자신들의 원칙을 저버릴수록, 야당은 환경과 미래 세대라는 강력한 도덕적 명분을 쥐고 공세를 펼치기가 한층 수월해집니다.
 
집값을 잡겠다는 일념 하에 밀어붙이는 공급 정책이 도리어 정체성의 혼란을 낳고, 야당에는 공수 교대의 완벽한 명분만 내어주는 정치적 부메랑이 되고 있습니다. 정책의 명분과 원칙이 흔들리는 지금, 과연 누구를 위한 공급 속도전인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사진=뉴시스)
 
이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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