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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프라임] 호르무즈 해협과 바다의 헌법
바다 인류 공동의 유산
입력 : 2026-08-18 오후 6:52:05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1967년 11월, 유엔 총회 단상에 선 인구 30만의 작은 섬나라 몰타의 주유엔 대사 아르비드 파르도(Arvid Pardo)는 3시간 넘게 연설을 이어갔다. “심해저는 강대국의 독점물이 돼서는 안 됩니다. 바다는 ‘인류 공동의 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섬나라 외교관의 외침을 향해 강대국들은 코웃음을 쳤다. 해양 패권국들의 눈에 그의 주장은 그저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자들의 헛된 이상주의이자 징징거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던 오랜 법질서. 즉, 17세기 후고 그로티우스의 ‘자유해론(Mare Liberum)’에 대한 거대한 도전장과도 같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바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명분의 실상은 막강한 해군력과 자본을 거머쥔 강대국이 마음껏 바다를 수탈할 수 있는 법적 면죄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026년8월18일 인천 송도에 위치한 인천항 넘어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강대국의 군함이 타국의 앞바다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거대 자본은 해저 자원을 독식했다. 약소국들에게 바다는 통제 불가능한 불평등의 공간이었다. 
 
공론화는 1973년부터 1982년까지 9년에 걸쳐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펼쳐졌다. 전 세계 150개국이 넘는 국가들이 맞붙은 치열한 진지전이었다. 강대국들은 기술과 자본의 우위를 앞세워 자유 보장을 주창했고 신생 독립국과 약소국들은 이들의 독주를 맞고자 했다.
 
조문 하나, 단어 하나를 두고 벌어진 지루하고 처절한 공방전은 단지 해양 영토의 경계를 정하는 기술적 협상이 아니었다. 거대한 강권 정치에 맞서 법치와 공영의 가치를 세우려는 약자들의 집단적 항전과도 같았을 것이다.
 
미국 등 해양 강국들은 협약안 중 깊은 바다 속 자원을 공동 관리하자는 조항에 반발하며 서명을 거부하거나 비준을 미뤘다. 그들은 ‘개발을 막는 족쇄’, ‘패배자들의 변명’이라며 비하했다.
 
마침내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CLOS)’이 발표된 것은 1994년이다. 320개 조항과 9개 부속서로 이뤄진 방대한 조문은 오늘날 지구 표면의 70%를 지배하는 ‘바다의 헌법’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8월18일 인천 송도에 위치한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선박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확립으로 연안국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해(High Seas)를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닌 인류 전체의 자산으로 묶어둔 UNCLOS 조문들은 무법천지였던 바다에 질서를 불러왔다. 
 
약자들의 연대가 쏘아 올린 법의 틀은 결국 강대국조차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규범의 벽이 된 것이다.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정의는 가장 뜨겁고 위대한 승전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중동 전쟁의 전운이 짙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UNCLOS는 시험대에 올려졌다. 최근 이란이 오만과 손을 잡고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항 경로를 분리하고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입니다.
 
이란은 전면 봉쇄 대신 협약 제26조와 제41~43조 논리로 ‘통항 서비스료 부과’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의 북극항로나 튀르키예·덴마크 해협의 선례를 들고 있다.
 
UNCLOS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법적 언어가 아니다. 1967년 파르도의 외침에서 시작해 인류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평화의 해양 헌법임을 다시금 증명해야할 때가 됐다.
 
 
2026년7월29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 원천마을 인근 해상에 보트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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