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나온 얘기는, 사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 아닌가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메이드 인 차이나’ 문구가 쓰인 반도체 기판 위에 중국 국기가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창간기획-반도체 전쟁>을 취재할 당시 ‘중국 반도체 굴기는 자주 나온 얘기가 아니냐’는 한 취재원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전자·반도체 분야를 취재한 후로 관련 기사를 허다하게 썼지만, 중국을 더 세게 옥죌수록 중국의 자립 속도는 그만큼 빨라졌다.
사실 중국의 산업 자립은 반도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른바 ‘레드테크’로 불리는 중국의 첨단 산업은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고 자체 기술력을 끌어올려 시장을 잠식했다. 배터리, 태양광 패널, 전기차가 그랬고 이젠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를 넘보고 있다.
‘중국 산업은 기업이 아닌 공산당이 본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있다. 부지, 전력 등 인프라 제공은 기본이고 세제 혜택, 보조금 등 대규모 자금 투입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국이 가장 무서운 점은 제품을 팔 시장을 직접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만들어준 덕분에 기업은 실패를 거듭하고 기술 개발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의 연이은 상장 소식은 업계의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상장 첫날 주가가 장중 500%가 넘게 뛰며 폭등했으며,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YMTC) 역시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자금 수혈을 마친 중국 기업들이 생산능력(캐파) 확장에 속도전을 펼치면,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중국 제품이 확산될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다행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력과 고객 파트너십 등에서 이들을 충분히 앞서고 있다.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양사 모두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선 약 5년의 기술 시차가 있다는 분석이다.
진짜 문제는 메모리에 쏠린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있다.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구형 공정이 선단 공정으로 전환되면서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들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해야 할 지점이다. 레드테크의 공습에 밀리지 않을 진짜 체력은 탄탄한 생태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