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휴대폰을 예약 구매해두고 출시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에 쓰던 제품보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화면은 더 컸다. 작은 화면으로 글을 읽는 일이 갈수록 불편해지던 차였다. 어둠 속에서 영상을 오래 본 탓인지, 라식수술 이후 노안이 일찍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새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출시한 갤럭시 Z 폴드8. (사진=뉴시스)
평일 아침, 갑자기 휴대폰의 통신이 끊겼다. 안테나 모양으로 표시되던 통신 상태가 순식간에 통신 불가로 바뀌었다. 기기 변경 과정에서 기존 유심이 먼저 정지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사무실은 와이파이 구역이어서 메신저와 인터넷은 사용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급히 휴대폰을 계약한 대리점으로 향해야 했다.
사무실을 나서며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이동통신이 끊긴 휴대폰으로는 택시 호출이 불가능했다. 차를 가져가기로 했지만 내비게이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지도 없이 대리점을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와이파이에 접속한 뒤 대리점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화면에 저장했다. 가까운 전철역과 큰 건물을 기준으로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30분쯤 지나자 통신은 다시 살아났다. 가까스로 연결된 대리점에서는 “기기 변경인데 왜 통신이 먼저 끊겼는지 모르겠다”며 새 휴대폰을 찾으러 오라고 했다. 후배 한 명은 “30분 동안 1990년대로 돌아갔겠다”고 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된 30분 동안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택시를 부를 수 없었고, 길을 찾을 수 없었으며, 전화조차 걸 수 없었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내 존재가 사라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휴대폰은 이미 전화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이었고, 카메라였고, 지갑이었으며, 지도와 메모장이었다. 여러 기기의 기능을 하나씩 흡수한 끝에 이제는 그것이 없으면 일상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게 됐다.
문득 AI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AI에게 자료를 찾고, 문장을 다듬고, 판단을 보조하는 일을 맡기고 있다. 지금은 편리한 도구지만, 어느 순간 없으면 일을 시작조차 못 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휴대폰이 끊긴 30분 동안 내가 얼마나 기계에 많은 것을 의존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AI도 휴대폰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잠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기술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없어도 최소한의 판단과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가끔 핸드폰 없이 살아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