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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가 증명한 닫힌 사회
입력 : 2026-08-04 오전 10:41:23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극장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허탈감에 빠져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거나, 크레딧이 채 다 올라가기도 전에 황급히 자리를 뜨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홍진 영화 '호프'.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공간에서도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재밌게 본 사람들은 재미없게 본 사람을 탓하지 않는데, 유독 재미없게 본 사람들이 재밌게 본 사람들을 ‘쥐잡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점 이상 평은 싹 다 댓글 알바로밖에 안 보인다”, “알바 땜에 1점 준다”는 흔히 나오는 악평 중의 하나다. “이제 재밌냐”, “홍명보 감독이 찍은 게 틀림없다”는 날 선 조롱도 넘친다.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자체를 원천 봉쇄해 버리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오죽하면 긍정 평가를 남기고 싶은 이들이 이동진 평론가의 호평 영상에 모여 “다들 왜 이렇게 화가 났나 했는데 여기가 천국”이라며 서로를 위로하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대중이 이토록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이면에는 ‘나홍진’이라는 이름이 주는 막대한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단지 미학에 치중해 화면을 꾸미는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었다. ‘추격자’나 ‘곡성’에서 증명했듯,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끌고 가는 압도적인 서스펜스와 그 안에 웅크린 인간 본성에 대한 메시지가 그의 전매특허다. 대중은 낯선 장르인 ‘SF’와 나홍진이 만났을 때 현실적이면서도 심장을 조여오는 ‘한국형 스릴러’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치밀한 개연성이나 묵직한 서사보다 시각적 스펙터클과 블랙코미디가 강조되면서, 관객이 원했던 본질적인 쾌감과 엇박자가 났다.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감이 배가돼 거친 분노로 표출된 셈이다.
 
영화가 직조해 낸 비극적 서사는 작품을 관람한 스크린 밖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다. 미지의 대상을 마주한 호포항 사람들이 소통 단절 속에서 타인을 배척하고 폭력성을 띠는 과정을 파고든 작품이 바로 ‘호프’다. 낯선 존재를 향해 무작정 총구를 겨누던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단지 영화가 기존의 문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또 나와 감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언어의 흉기를 휘두르는 스크린 밖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영화를 대하는 작금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닫힌 사회의 늪’에 깊숙이 빠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물론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극 중 해술 할아버지가 펼치는 ‘눈물겨운 괄약근 사투’는 불필요하게 길고 과했으며, 최근 몸값이 수직 상승한 정호연의 연기는 기대에 못 미치게 몹시 어색했다. 의미 있는 대사도 딱히 없고, 외계인 떡밥 회수는 안 됐으며, ‘불사조’ 조인성은 관객을 납득시키기에 역부족이다. 전반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고 서사가 빈약해 굳이 두 시간 반을 꽉 채울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지인들의 혹평 속에 남몰래 짜릿한 쾌감을 맛본 관객 중 하나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고 어디다 말도 못 했기에 살짝 끄적여 보자면, 미술과 시대 구현은 단연 압권이었다. 무너진 전신주와 너덜너덜한 시장의 황폐함 속 대낮부터 뚝 떨어진 외계인의 모습은 리얼했다. 특히 좌우 3면으로 화면이 확장된 스크린X로 관람한 경찰차와 말 체이싱 시퀀스는 펄떡이는 날것의 속도감 그 자체로 스크린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거친 질주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간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 것 같은 서늘한 숲을 시각화해서 보여준 것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그러니 세상의 매서운 평점은 잠시 잊고, 기꺼이 질주에 한 번쯤 탑승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만 즐겼으면 그만 아닌가.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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