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통신사들은 전국 곳곳에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당장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도 광케이블을 먼저 설치하고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해야 가입자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구축된 초고속인터넷망은 검색과 전자상거래, 인터넷뱅킹을 일상으로 만들었고, 이후 모바일·플랫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최근 이어지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DC) 투자 경쟁은 당시의 구축 붐을 떠올리게 합니다. SK그룹은 15GW, KT는 1GW 규모의 AIDC 공급 계획을 꺼냈고 LG유플러스도 파주 데이터센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실제 고객과 수요를 모두 확보하기 전부터 부지와 전력, 변전소를 선점하는 것도 초고속인터넷 초기와 닮았습니다. AI 산업에서도 먼저 인프라를 확보한 사업자가 향후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입니다.
MWC2025 SK텔레콤 부스에 설치된 AIDC 모형.(사진=뉴스토마토)
다만 경쟁의 단위는 달라졌습니다. 과거 통신사의 힘이 기지국 수와 광케이블 길이에서 나왔다면, 이제는 얼마나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대규모 연산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경쟁축이 '망의 시대'에서 '전력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초고속인터넷이 정보를 찾고 물건을 사고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꿨다면, AIDC는 AI가 산업과 일상 곳곳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병원과 학교, 금융과 행정에서는 개인별 AI 서비스가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AIDC 경쟁은 단순한 데이터센터 증설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전환기를 준비하는 인프라 경쟁입니다. 누가 더 큰 숫자를 발표했느냐보다, 실제 전력과 고객을 확보하고 이를 우리 삶의 변화로 연결하느냐가 결국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