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정부가 자동화 항만을 넘어 인공지능(AI)이 실시간 제어할 수 있는 ‘피지컬 AI 항만’에 고삐를 죄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처리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 항만이 AI와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지능형 로봇’으로 탈바꿈하는 겁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2035년까지 36조원 규모의 생산유발효과가 기대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지만 기술 자립도의 현실, 재원 조달의 한계, 일자리 감축 우려 등 과제가 산적하기 때문입니다.
2026년1월22일 부산에 위치한 부산신항에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속알맹이’까지 기술자립 절실
해양수산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발표한 ‘피지컬 AI 항만 전략’은 국내 항만의 생산성을 30% 끌어올리고 2035년까지 글로벌 항만 장비·시스템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입니다.
현재 글로벌 항만의 하역장비는 상하이진화중공업(ZPMC)이 약 70%, 항만운영시스템(TOS)은 미국 나비스(NAVIS)가 약 24%를 점유한 독점 시장입니다. 우리나라는 항만운영시스템(TOS) 분야에서 싸이버로지텍 등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약 1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 2010년대 중반 생산을 중단한 현대삼호중공업도 2022년부터 크레인 생산을 재개하는 등 최근 미국 수출길에 오르고 있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무인이송차량(AGV)은 현대로템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최중량 화물 운반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습니다. 완제품 조립 수준을 넘어 장비의 ‘속알맹이’까지 기술을 자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 단초입니다. 현장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센서 및 정밀 제어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입니다.
AGV 등 핵심 부품 국산화율을 제고하면 크레인에 비해 AGV 등 자율이송장비가 외국 기술에 쏠려 있습니다. AGV 차체 조립에는 성공했으나 장애물을 감지하는 라이다(LiDAR) 센서나 정밀 제어 부품이 대표적입니다.
단순 완제품 조립을 넘어 핵심 부품 단위의 국산화율 목표치를 정교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21일 부산항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테스트베드 중요성과 재정 지원
2032년 개장할 초대형 ‘진해신항 1단계’도 실전 무대에 나서기 전 실험용 항만 역할의 중요성이 큽니다. 실험용 항만인 ‘광양항 테스트베드’는 2029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개발된 AI 항만 두뇌(AI TOS)와 국산 로봇 장비들이 서로 오류 없이 완벽히 맞물려 돌아가는지 광양항에서 미리 꼼꼼히 검증하고 규격화해야만 추후 진해신항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물류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광양항에는 실제와 가상 항만 환경을 연계한 ‘(가칭)첨단항만기술원’ 설립을 검토·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데이터의 수집, 기술 실증, 표준·성능 인증 등의 공통 지원 기능을 집적해 기술개발과 적용을 현장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구개발(R&D) 예산의 한계와 민간 투자 유인책의 실효성도 따져볼 부분입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약 3조3000억원의 재정을 마중물로 투입해 총 11조6000억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행 확보된 관련 R&D 예산은 약 1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데다, 3조3000억원의 재정 중 나머지 인프라, 데이터센터 건립 등에 배분되는 세부 예산 비중도 아직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안건 상정을 계기로 피지컬 AI 관련 R&D 예산을 지속적으로 신규 확보해 나갈 예정”이라며 “내년쯤 세부 실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민간 운영사의 투자 유인과 관련해서는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 등의 투자 펀드를 활용해 사업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다만, R&D 예산이 매년 신규 신청 체계로 운영되는 만큼, 정권이나 재정 여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중장기 전용 R&D 예산을 정립할 필요성도 요구됩니다. 아울러 고비용의 AI 장비 도입을 민간 운영사의 자발적 투자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만큼, 해진공 펀드 확대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세제 혜택 및 항만공사(PA) 경영평가 가점 등 민간 운영사 체감형 인센티브 마련이 요구됩니다.
2026년6월1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피지컬 인공지능(AI) 얼라이언스 2기 출범식에서 한국 스타트업 로봇이 시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 전환’ 관건, 사이버 보안 ‘핵심’
특히 일자리 상생의 숙원 과제는 최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피지컬 AI 전환 과정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는 단연 ‘노동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컨테이너 고정장치 해체, 선박 줄잡이 등 고위험 작업의 무인화는 안전사고 차단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직간접적인 고용 불안으로 직결됩니다.
해수부와 항만공사 등은 피지컬 AI 전환에 따른 현장 하역 노동력 감축 예상 규모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장 현장이 없어지는 개념이 아닌 관계로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감축 수치까지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진해신항 1단계 개장은 2032년으로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정부는 향후 구체적인 작업 부두의 여건을 보며 노사정협의체를 활용한 협의 과정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노동 감축 분석이 빠진 상태에서는 현장 재교육 및 직무 전환의 구체적 방향성을 잡기 어렵다”며 “신규 항만(진해신항) 중심의 도입이라 할지라도, 기존 항만으로의 확산 과정에서 발생할 인력 재배치 규모를 선제적으로 추산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또 상생형 재교육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도 제시했습니다. 그는 “부산항 신항 7부두(2-5단계)의 노사 합의 안착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 하역 노동자를 AI 운영·로봇 정비 등 고부가가치 기술 인력으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조기에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초연결망의 사이버 보안도 핵심 과제로 꼽힙니다. 배후단지 데이터센터가 하나로 연결되는 피지컬 AI 항만은 사이버 공격 시 국가 수출입 물류 전체가 마비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해수부 측은 사이버 보안 우려에 대해 “과기정통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력 체계 구축 외에도 해수부 자체적으로 항만 특화 사이버 보안 관련 자체 연구 용역을 수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사이버 보안 전문가는 “AI 시스템 해킹이나 통신 장애 발생 시 항만이 멈춰 서지 않고 즉시 수동·제어 모드로 전환되는 이중화 안전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라며 “법적 근거의 조속한 정비 등 추진 중인 ‘항만기술산업법’ 정비를 통해 피지컬 AI 장비의 사이버 보안 인증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2026년1월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서 참가자가 피지컬 인공지능(AI)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산=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