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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아래서
입력 : 2026-07-15 오후 4:48:35
장마. (사진=뉴시스)
 
어제는 오랜만에 비가 많이 내렸다. 구멍이 뚫린 샌들을 신고 물웅덩이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건 여름의 특권, 비가 내리는 계절에 태어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장마를 좋아한다고 하면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에게 장마는 출근길을 막히게 하고, 빨래도 마르지 않게 하는 등 번거롭게 만드는 계절이다. 하지만 내게 장마는 여름과는 또 다른 계절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젖은 흙냄새, 회색으로 물든 하늘. 딱 장마철에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우리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왔다. 비를 맞지 않도록 자동차를 만들고, 젖은 빨래를 위해 건조기를 만들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배달 서비스를 만들었다. 기다리지 않기 위해 새벽배송이 생겼고,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더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했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고, 이제 '불편함'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하지만 장마만큼은 다르다. 아무리 좋은 우산을 써도 바짓단은 젖고, 정확한 일정을 짜도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계획을 바꿔 놓는다. 우산을 들고도 비를 피하려 처마 밑을 뛰어가고, 잠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장마는 현대 기술이 완전히 없애지 못한 몇 안 되는 불편함이다.
 
흥미로운 건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는 점이다. 우산 하나를 함께 쓰며 자연스럽게 어깨를 맞대는 사람들, 편의점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낯선 사람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맑은 날이었다면 지나쳤을 순간들이 장마에는 생겨난다. 우리는 늘 불편함을 줄이는 데 익숙하지만, 어떤 장면은 불편함이 있어야만 만들어진다.
 
물론 장마는 낭만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다. 집중호우는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기후변화는 비를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으로 만들고 있다. 불편함과 위험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재난은 줄여야 하지만, 모든 불편함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매끄럽게 만들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조금의 기다림도, 약간의 번거로움도 견디지 못하는 사회에서 장마는 정말 모든 불편함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계절은 언젠가 끝나고 도시는 다시 익숙한 속도를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도 장마를 기다릴 것 같다. 비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장마가 일 년에 한 번쯤은 잊고 지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편리함만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우산을 챙기고, 발이 젖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소한 번거로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감정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
이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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