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금주 기자] 한때는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수 지드래곤(G-DRAGON) 씨가 양산을 한 번만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양산을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는 유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공항에서 신은 신발 하나, 손에 든 가방 하나도 품절시키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양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쓰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멋 때문에라도 따라 쓰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양산을 쓰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양산은 다소 어색한 물건이었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유명인이 먼저 써주기를 바랐습니다. 양산을 쓰는 것이 '유난'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들어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런 바람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최근 길거리를 걸어보면 양산을 든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직장인도, 학생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지드래곤 씨가 쓰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이미 양산을 들고 걷고 있습니다. 유행이 아니라 생존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에는 경북 경산 등 남부 일부 지역에 올해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습니다. 폭염은 더 이상 유난히 더운 여름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기후위기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체감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는 누구나 즉시 체감합니다. 특히 냉방시설이 부족하거나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취약계층에 기후위기는 훨씬 더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양산을 쓰고, 물을 자주 마시고, 한낮 외출을 줄이는 것은 모두 필요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양산 하나가 폭염을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그늘을 만들 도시 설계와 녹지 확충, 폭염 취약계층 보호 대책,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인프라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당장의 폭염 대응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 등 근본적인 기후위기 대응도 병행돼야 합니다.
최근 정부는 공급망 안정을 위해 국제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에너지,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공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역시 국경을 넘는 문제입니다.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급망 안정을 위해 손을 맞잡듯, 기후위기 대응 역시 다시 국제 협력의 중심 의제가 돼야 합니다.
지드래곤 씨가 양산을 썼다면 조금 더 빨리 유행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유명인의 영향력을 기대할 단계는 지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양산을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후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우리 일상을 바꿔놓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양산을 쓰느냐'가 아닙니다. 왜 모두가 양산을 쓰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여름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폭염은 더 이상 개인이 양산 하나로 버텨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됐습니다.
윤금주 기자 nodrin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