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캡처)
최근 걸그룹 리센느의 멤버 원이가 영상에서 "무섭노"라고 말한 장면이 논란이 됐습니다. 해당 표현이 경상도 사투리인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사용하는 말투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논란은 정치권까지 번졌습니다. 누군가는 혐오 표현의 뿌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멀쩡한 지역 사투리를 특정 커뮤니티의 언어로 몰아갔다고 반박했습니다.
혐오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속에는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특정 집단의 아픔을 조롱하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경계가 지나치게 단순해질 때입니다.
어떤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정치 성향과 가치관, 소속 집단까지 단정해버리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이번 논란에서도 그 말을 어떤 맥락에서 썼는지, 평소에 어떻게 사용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단어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표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논란을 보면서 문득 "내가 쓰는 말 중에도 논란이 되는 게 있으려나" 걱정됐습니다. 특정 숫자를 사용해도 괜찮은지, 문장 끝에 어떤 어미를 붙이면 오해받지는 않을지. 이제는 단어를 사용하기 전 검색해 보고 써야할 지경까지 온 듯합니다.
조심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표현을 의심하고, 그 표현을 쓴 사람을 곧바로 낙인찍기 시작하면 대화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계속해서 해명해야 하고, 의도를 말하기 전에 소속부터 증명해야 합니다.
혐오를 막기 위해 만든 경계선이 다시 사람을 나누는 선이 되는 셈입니다.
특히 이번 논란에서는 지역의 언어가 문제의 표현으로 지목됐습니다. 실제로 일상에서 그 말을 사용해온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말투가 하루아침에 혐오의 증거로 취급된 겁니다. 혐오 표현을 가려내려다 오히려 특정 지역과 세대의 언어를 낮춰 보는 또 다른 차별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는 사전에 적힌 뜻만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같은 말도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악의적인 조롱에 쓰인 표현과 일상적인 사투리를 구분하려면 단어만이 아니라 그 앞뒤의 맥락까지 살펴야 합니다.
혐오 표현을 경계하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경계가 또 다른 낙인과 배제를 만드는 순간, 우리는 혐오를 없앤 것이 아니라 방향만 바꾼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