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례의 방문. 17개의 MOU.
2023년부터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수주를 위해 정부와 한화오션이 ‘투자’한 숫자다.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움직인 총력전이었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III 잠수함 (사진=한화오션)
아쉽지만 결과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의 승리였다. 캐나다 정부는 TKM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화오션은 기술력과 납기, 가격 경쟁력, 현지 산업 기여 방안을 강조했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사업은 애초부터 단순한 성능 평가만으로 끝날 판이 아니었다. 캐나다 정부는 잠수함의 기술력과 납기뿐 아니라 자국 경제 전반에 미칠 효과까지 따졌다. 양 측의 기술력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한화오션은 2044년까지 700억 달러(약 75조원) 이상의 무역·투자 유치와 연간 2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 막대한 산업 협력 패키지를 제안했다. 독일도 캐나다 국내총생산(GDP)에 860억 캐나다 달러(약 93조원)를 기여하고, 누적 일자리 65만개 이상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치상으로는 독일 측이 좀 더 규모가 크다. 하지만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이 같은 수치가 최종 승부를 가른 핵심 변수는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높았던 것은 ‘나토의 벽’이었다. 나토 조달망과 군수지원 체계 편입 측면에서 TKMS는 애초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독일은 나토의 핵심 회원국이고, TKMS 잠수함은 유럽 내 운용·정비 생태계와 맞물려 있다.
기술력이나 가격, 납기일의 싸움이었다면 한화오션이 기대해 봄 직 했다. 그러나 캐나다가 이번 결정을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표했다는 점, 최근 미국과의 통상·안보 갈등 속에서 유럽과의 안보 협력 강화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 자국 방위비 증액과 나토 내 역할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캐나다의 선택은 외교적·전략적 판단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 전문가는 “한화오션이 못해서 진 사업이라기보다, 캐나다가 나토 안보망 안에서 해석한 측면이 크다”며 “잠수함 성능과 납기, 가격 경쟁력만 놓고 보면 한국 제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지만, 캐나다 입장에서는 동맹 운용성과 장기 군수지원, 유럽 안보 협력이라는 정치적 변수까지 함께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패배를 단순한 실패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수주전 과정에서 현지 네트워크를 크게 넓혔고, 정부도 K방산 수출을 위해 민관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 팀코리아로 하나의 사례를 만들었다. 잠수함 수출 시장에서 한국이 독일과 마지막까지 맞붙는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줬다. K방산이 다음 단계로 가려면 단순한 ‘가성비’와 ‘납기’를 넘어, 구매국이 속한 외교·안보 질서와 동맹 구조의 언어까지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