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가 반도체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에 호응한 삼성그룹과 SK그룹의 475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투자액에 더해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이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도체의, 반도체에 의한 한국경제라 할 만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 발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견된 만큼, 적정 수준의 투자와 정부 지원이 뒷받침 되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또한 미래 산업의 무게 추는 결국 첨단 기술로 옮겨가고 반도체는 그 산업의 필수불가결한 재료인 까닭에,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산업 전반에서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재의 반도체 대호황도 천년만년 갈 보장도 없다. 시장의 사이클에 따라 불황이 닥쳤을 때, 특정 단일 산업에만 올인한 경제 구조는 그 충격을 온전히 흡수하기 어렵다.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다른 주력 산업들을 돌아보고, 산업 전반의 균형 잡힌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철강·석유화학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부 지원책도 시급하다. 한때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대들보였던 철강과 석유화학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저가 물량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는 한국 철강·석유화학 업계 생존마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의 각종 인프라 지원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으로만 기울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철강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K스틸법’이 시행됐지만, 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인 전기요금 지원 방안은 끝내 담기지 못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전력 배정 과정에서 전통 제조업이 소외돼선 곤란하다.
글로벌 ‘탄소중립’ 강화 기조는 철강·석유화학 업계에 또 다른 생존의 벽이다. 수소환원제철 전환이나 친환경 화학 소재 개발 등 체질 개선을 위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불황으로 투자 여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지원 없이 홀로 생존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라고 한다면, 철강과 석유화학은 경제를 지탱하는 ‘근육과 뼈대’라고 볼 수 있다. 근육과 뼈대 없이 심장만으로는 온전히 움직일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전통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첨단 산업과 전통 산업이 바퀴의 양 축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균형 잡힌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격랑 속에서 한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