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선임 과정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북중미 월드컵은 결국 우려했던 대로 '32강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축구는 결과로 말한다. 그리고 국가대표 감독은 그 결과에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자리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탈락은 선수들만의 실패나 불운이 아니다. 수년간 대표팀을 어떤 철학으로 운영했고, 어떤 방향으로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총체적인 성적표다. 월드컵은 감독의 지도력과 리더십, 축구 철학이 가장 냉정하게 평가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을 더욱 실망하고 결과에 분노하게 만든 것은 패배 자체보다 그 이후의 태도였다.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에서 물러나며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나 리더가 문제를 일으키고 불명예 퇴진을 하는 경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사태 무마용으로 던지는 '책임지겠다'는 말은 너무 쉽게 남용되고 있다. 논란이 커질 때마다 등장하는 상투적인 수사일 뿐, 정작 책임이 어떻게 이행됐는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어떻게 책임을 졌는가라는 행동이다.
책임은 종이 한 장에 적힌 사퇴문을 읽는 절차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감독 한 사람의 직무 유기와 태만, 무능으로 인해 월드컵 도전이 무산된 선수들의 커리어, 시간, 노력, 희생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인가. 홍명보 감독이 말하는 책임은 참으로 오만하고 무책임하다.
작금의 국민적 공분은 단순히 경기에 져서, 32강에 탈락해서가 아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제대로 소임을 다하지 않고 방만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공적인 책임보다는 사사로운 이권에 집착해 축구 국가대표팀의 본질을 망각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팀은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응원과 선수들의 희생 위에서 존재하는 공공의 자산이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어떤 선수들에게는 평생을 바쳐도 다시 오지 않을 꿈의 무대다. 수많은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그 한순간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 훈련한다. 팬들 역시 승패만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도전과 성장, 헌신의 서사에 감동하며 대표팀을 지지한다.
하지만 수십년 간 쌓아온 한국축구 역사와 자산이 축구협회라는 견제받지 않은 조직과 무능한 수장들로 인해 망가졌다. 지금부터 쇄신한다 해도 망가진 조직을 회복할 수 있을지, 정상화까지 시간과 비용, 노력이 얼마나 들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대표팀이 왜 경쟁력을 잃었는지, 왜 경기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됐는지, 왜 전술적 변화는 없었는지, 왜 선수 선발과 운용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됐는지에 대해 책임 있는 자의 납득할 만한 설명을 원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원인을 모르겠다'는 무성의 답변과 책임회피 뿐이었다.
대표팀 운영 내내 제기됐던 전술 부재 논란도 마찬가지다.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전무했고, 경기 흐름을 바꾸는 전략과 선수기용 논란은 아직도 해명되지 못했다.
사퇴는 책임의 시작일 뿐, 책임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동 없는 책임은 '무책임한 책임'일 뿐이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