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 불러라." "술 받아라." "옆에 앉아라."
한 여성 소방관이 생전 직장에서 들었다는 말들은 낯설지 않습니다.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더 참담합니다. 국무조정실 점검 결과, 지난해 숨진 광주 여성 소방공무원은 회식과 음주 강요, 사적 지시, 부적절한 호칭 요구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망 이후에는 유가족의 감찰 요구가 형식적으로 처리됐고, 가해자로 지목된 부서장이 감찰 관련 책임자 역할을 맡는 사실상의 '셀프 조사'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한 조직의 일탈로만 볼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오래된 회식 문화, 위계 문화, 성별 권력 관계가 한 사람의 일상과 존엄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특히 "술 한잔 받아라",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라"는 말은 겉으로는 친근함이나 조직 적응의 언어처럼 포장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거절하기 어려운 위계가 있고, 여성에게만 더 쉽게 요구되는 감정노동과 신체적 불편함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본 많은 여성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거나 받아야 했던 경험, 상사의 농담을 억지로 웃어넘겨야 했던 불쾌감, 때로는 노골적인 신체 접촉까지 '분위기'라는 이름으로 견뎌야 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20여년 전에는 이런 문화가 훨씬 더 공공연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예민한 사람으로 몰렸고, 참는 것이 곧 사회생활이라고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제도와 인식은 분명 달라졌지만, 이번 사건은 낡은 문화가 여전히 일부 현장에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편은 회식장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밤길을 걸을 때의 긴장감, 길을 걷다 일부러 어깨를 부딪힌 이에게 항의하지 못하는 순간, 이런 경험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나는 그런적 없는데"라는 반응까지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장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던 두려움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모 평가, 신체 접촉을 가장한 농담, 상사와의 친밀함을 강요하는 말들이 반복되면 그것은 '소소한 불편'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 됩니다. 피해자는 문제 삼는 순간 조직 부적응자가 될까 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봐, 괜히 일을 키운 사람이 될까 봐 침묵합니다. 그렇게 침묵이 쌓이고, 조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러갑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진짜 페미니즘은 '페미'도, 여성 상위주의도 아닙니다. 남성을 적으로 돌리자는 주장도 아닙니다. 성별 때문에 누군가가 더 쉽게 침묵을 강요받고, 더 자주 불안에 노출되며, 더 낮은 위치에서 참아야 하는 구조를 바꾸자는 요구입니다. 여성도 남성도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모두를 위한 평등의 언어입니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일이 있느냐"는 말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것은 피해자가 참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용기가 아니라 조직의 태도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애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겨온 술자리 문화, "원래 조직생활이 그렇다"며 방치해온 위계 문화, "그 정도는 농담"이라며 축소해온 성차별적 문화를 끝내야 합니다. 누구도 성별 때문에 모욕당하지 않고, 누구도 위계 때문에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말해야 할 평등이고, 이번 사건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