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금주 기자] 말랑이 붐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보다 훨씬 전에 말랑이를 접해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만졌을 때의 소감은 단순했습니다. '이걸 왜 만지는 걸까.' 그렇게 제 첫 말랑이는 방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은 채 금세 잊혔습니다.
동묘 완구거리에서 구매한 슬랑이 모습. (사진=윤금주 기자)
그런데 최근에는 슬랑이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보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말랑이를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조차 직접 만져본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며 입을 모으는 모습에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했습니다.
쉬는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최근 다양한 종류의 말랑이와 슬랑이를 판매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동묘 완구거리로 향했습니다. 직사광선을 피할 곳도 없는 거리의 작은 문구점들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더위를 견디며 인파를 헤치고 어렵게 구한 슬랑이를 손에 쥐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의 열광이 조금은 이해됐습니다.
말랑하게 눌리는 촉감과 손끝에서 들리는 자그락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잠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듭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걱정과 피로도 잠깐이나마 잊힙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랑이를 찾는 이유는 장난감 자체보다 그 짧은 휴식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말랑이와 슬랑이에 열광하는 이들은 어린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인 소비자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아무 생각 없이 손끝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짧은 쉼이 필요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변화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부동산 자산 보유 여부에 따른 격차는 커지고 있고, 반도체 호황은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마저 확대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졌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코스피 1만 시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그 과실이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갈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국제 정세도 녹록지 않습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는 흔들리고,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안보 불안은 커지고 있으며, 종전 소식이 들려와도 언제든 다시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약속이 뒤집히는 일도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어느새 딱딱함과 냉정함이 경쟁력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언제나 강한 압박과 차가운 논리만은 아닙니다. 이솝우화 속 나그네의 겉옷을 벗긴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도 그런 온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손에 쥔 말랑이 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여유를 만들어줄 수는 있습니다. 말랑이와 슬랑이가 유행하는 이유도 결국 그 때문 아닐까요. 딱딱한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작은 틈, 그리고 조금 더 말랑한 사회를 향한 바람 말입니다.
윤금주 기자 nodrin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