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반도체 호황에 따른 IT 업종의 성과급 확대가 산업 전반의 임금 상승 요구로 번지면서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한은이 17일 발표한 ‘일부 IT업종 임금 상승의 물가 파급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IT 부문 성과급 지급은 과거에 비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큰 규모의 특별급여가 일부 사업체에 집중적으로 지급될 경우 물가 상방 압력이 유의하게 커진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대기업의 대규모 성과급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다 일부 기업에 집중된 고액 성과급이 전체 임금 상승률을 끌어올리고, 다른 업종의 임금 인상 요구까지 자극하면서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대호황으로 물가 상승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기업 종사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미지=챗GPT)
경제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급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집값과 소비, 결혼시장,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신호’가 됐다.
회사를 그만 둔 지 몇 년 된 후배 이야기가 나왔다. 유독 착하고 성실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던 친구였다. 한 선배는 그 친구에게 재입사를 권유했다고 한다. 후배는 아직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간접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던 중 누군가가 “그 친구 배우자가 ** 다닌다더라”라고 했다. **는 모두가 알 만한 반도체 대기업이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럼 그렇지”, “알 만하다”, “굳이 돈 벌 필요 있겠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집을 샀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애가 참 착했는데, 복 받았네”라는 말도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그 후배의 지금 어떤 삶을 사는지,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배우자의 회사 이름만 듣고 그의 삶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호황은 기업의 실적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군가를 설명할 때 성격이나 가치관보다 직장이 먼저 언급되고, 그 회사 이름만으로 삶의 모습까지 짐작하게 됐다.
한국은행은 이를 물가 상승 압력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물가보다 먼저 변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성실함과 선택, 지금의 삶보다 배우자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 먼저 설명되는 사회.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경제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일지 모른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