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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권리까지 빼앗는 사회
입력 : 2026-06-17 오후 2:09:35
요즘 아이들의 '자존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비교당하지 않도록,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흥행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아이의 자존감과 정서적 피해를 앞세워 학교와 교사를 압박하는 학부모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질까 봐 발표도 못 시키게 하고,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무조건 본인 아이 편을 서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미지=ChatGPT)
 
"드라마라서 그런 거겠지" 싶었지만 비슷한 흐름은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무승부 운동회, 상장 없는 졸업식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합니다. 패배를 맛보게 할 수 없다는 거고, 내 아이는 상을 받지 못하는데 다른 아이만 앞에 나가 상장을 받으면 박탈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 마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가 비교 속에서 주눅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너무 이른 좌절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자연스러운 걱정입니다. 하지만 모든 경쟁과 결과를 지워버리는 방식이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걸까요, 실패할 기회까지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는 경험도 교육입니다. 친구보다 느리게 달릴 수 있고, 상을 못 받을 수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는 일입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실패와 고통을 이야기했습니다. 위대해지려면 고통과 실패를 겪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요. 실패가 즐겁다는 뜻은 아니지만 실패를 완전히 피한 채 성장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자존감도 그런 것 아닐까요. 늘 이기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자존감이 아니라, 져도 끝이 아니라는 걸 아는 자존감. 상을 받지 못해도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자존감. 남보다 부족하더라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자존감 말입니다.
 
물론 경쟁을 무한정 강화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경쟁의 폐해를 줄이겠다고 결과 자체를 없애버리면, 아이는 실패를 견디는 연습을 할 기회도 잃습니다.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선의가 오히려 작은 상처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여린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비교와 경쟁이 유난히 강한 사회입니다. 어느 나라보다 입시, 취업을 중시하는 사회인데요. 그런데 정작 지는 법, 실패한 뒤 다시 일어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척박한 사회가 될지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교육은 아이를 영원히 안전한 방 안에 두는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마주할 세상 앞에서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자존감은 상처를 한 번도 입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상처를 입고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힘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켜줘야 할 것은 실패 없는 자존감이 아니라,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 아닐까요.
전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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