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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거리응원
입력 : 2026-06-12 오후 6:56:47
사흘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이 언제, 어느 나라에서 열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았습니다. 주식을 하지 않아도 삼성전자 주가를 알고,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손흥민 이름은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월드컵은 더 이상 예전처럼 모두의 공통 화제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올해 2월 열린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도 "하는 줄도 몰랐다"는 말이 나오는 사이 끝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대규모 거리응원 없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온 나라가 들썩였을 국제 스포츠 이벤트들이 어느새 각자의 화면 속에서만 소비되는 행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린 이날 광화문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대한축구협회와 KT, 붉은악마가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응원 행사를 마련하면서 평일 오전인데도 붉은 응원복을 입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점심시간 무렵 체코전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직장인들이 몰린 식당마다 함성이 터졌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승리의 여운을 나눴습니다. 월드컵이 다시 시작됐다는 사실보다, 오랜만에 거리응원 문화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결국 대회 중반에 친구들과 광화문광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이긴 순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나가다 "짝짝짝짝짝!" 박수를 치면 전 국민이 당연하게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그 장면들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합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사람들이 열광한 대상은 축구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같은 순간을 기뻐할 수 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경험이었습니다. 세대도, 직업도, 정치적 성향도 달랐지만 그날만큼은 모두가 같은 장면을 바라봤습니다. 2002년 광화문이 특별했던 이유도 4강 신화 자체보다 그런 공동의 경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혼자 조용히 스마트폰을 켜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반응을 나눕니다. 관심사와 취향은 점점 세분화돼 같은 뉴스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화면을 바라보는 일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광화문 풍경은 더 반가웠습니다. 월드컵 때문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특정 선수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정치도, 세대도, 직업도 달랐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경기를 보며 함께 웃고 환호했습니다.
 
되살아난 광화문의 월드컵 열기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날 광화문을 보며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풍경이 이제는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거리응원이 유난히 반가웠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이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평일 오전인데도 연차를 내고 광장을 찾은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응원복을 입고 나온 젊은이들, 가족과 함께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까지 광화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유로 나온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경기를 보며 함께 웃고 함께 환호했습니다.
 
어쩌면 이날 광화문이 보여준 것은 월드컵 열기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즐기고, 함께 응원하고, 함께 기억할 순간을 찾고 있었습니다.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시민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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