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1978년 제정한 미국의 ‘험프리-호킨스법’에는 가장 묵직한 법적 의무가 명시돼 있습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를 결정할 때 물가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들여다보는 지표가 바로 고용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불리는 미국이 이토록 고용 지표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 뿌리에 ‘완전고용법(Full Employment Act)’ 정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의 원천은 국민의 소득이고, 소득의 원천이 일자리입니다.
고용 지표의 악화는 미국 경제의 핵심 엔진인 소비가 곧 꺼질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선행 신호입니다. 시장과 정부가 이에 발작적으로 반응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 고용은 정권의 생명줄입니다. 유권자가 집권 세력을 평가하는 가장 직관적인 기준은 결국 ‘내 일자리가 안전한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출발점은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었습니다. 주식시장 붕괴 이후 미 실업률은 한때 20%를 돌파했고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연쇄 파산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시장이 알아서 균형을 찾는다’는 고전적 자유방임주의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은 인류에게 시장이 스스로 완전고용 상태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각인시켰습니다.
지난 5월1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학생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공황의 공포 속에 제정된 ‘1946년 고용법’과 고실업·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격랑 속에 강화된 ‘1978년 험프리-호킨스법’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모든 시민은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으며, 국가가 이를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시장의 자율적 메커니즘이 고용을 해결하지 못할 때, 정부가 ‘최종 고용주’로 나서 국민의 삶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력한 ‘국가 책임론’의 발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미래의 주역이 돼야 할 청년들에게선 점점 미래가 지워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필두로 수출 실적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무역수지도 견고한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왜 청년들의 앞날은 이토록 어둡기만 할까요.
바로 ‘성장은 있되 일자리는 없는’ 냉혹한 현실 때문입니다. 대기업 상용직의 실질임금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 상용직 임금은 과거 수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임시·일용직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도체 대기업의 상용직 고용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고용은 소폭 증가에 그쳤고 그마저도 임시·일용직 중심입니다. 반면 협력업체를 포함한 중소기업 고용은 정체되거나 퇴보 중입니다. 반도체로 쏠린 성장의 과실이 정규직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제조업은 생산성을 극도로 높지만 고용 창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지닙니다.
지난 5월1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한 학생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이 일찍이 일자리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했듯, 우리나라도 이제 성장의 ‘내용’을 전면 재점검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반도체 수출 증가와 주가 상승만으로는 국민 다수의 삶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성장의 혜택이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에만 집중된다면 사회적 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될 뿐입니다.
무엇보다 청년이 마주하는 실패의 대가가 너무도 가혹합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등 떠밀리듯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발판을 찾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인재가 혁신의 현장 대신 의대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으로 몰려드는 현상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을 미래로 이끌 ‘강한 돛’은 무엇일까요. 최근 큰 울림을 준 어느 공대 교수의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첫 경력 보장제’입니다. 청년들이 실패의 위험이 큰 도전적인 분야에 뛰어들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그 첫 번째 경력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단순한 낙오가 아닌 사회 전체가 축적한 자산으로 평가하고 다음 기회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돕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조차 위기 때마다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법적 의무’임을 선포하고 중앙은행의 성격까지 뜯어고쳤습니다.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시장 자율’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회피해왔나요. 사회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때 성장합니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미래라면 그 미래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4월15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 앞 로비에서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