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두 가지 극단적인 인식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는 실체 없는 '음모론'의 맹신이며, 다른 하나는 명백한 사실조차 외면하는 '형식적 사법주의'입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모두 건강한 상식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선거 직후 투표지 부족이나 확률적으로 희박한 득표수 등을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거대한 선거 조작을 기획한 세력이 이토록 허술하고 노골적인 흔적을 남겼을지 의문입니다.
맹목적인 음모론은 결국 사회적 혼란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노리는 세력에게만 유용할 것입니다.
파편적인 현상에 억지 논리를 끼워 맞추는 음모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드러난 실체적 진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반대로,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명백한 반민주적 행위나 중대한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관대한 잣대가 적용되곤 합니다. 군대가 국회를 침범하는 눈앞의 범행이 CCTV에 찍혔음에도 "확정 판결 전까지는 무죄"라며 눈을 가리는 행태가 대표적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할 정치·지성 집단이 명백한 사실관계를 부정하고 사법부의 최종 판단 뒤에만 숨는다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상식은 마비됩니다.
사법적 형벌과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다릅니다. 법적 절차를 핑계로 국민의 집단지성이 내린 명백한 평가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없는 사실을 부풀리는 '음모론'과 있는 사실을 축소하는 '법적 핑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두 가지 모두 진실을 호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제는 소모적인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눈앞에 드러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상식과 이성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과 관련해 8일 오후 대구시 선관위 앞에서 지역 기초의원들이 민주주의 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