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던 오후 6시. 국민의힘 지도부는 미동 없이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속내를 들킬세라 눈만 깜박인 채 무표정을 유지했습니다. 상황실이 마련된 국민의힘 중앙당사 지하 1층은 이들의 반응을 포착하는 기자들의 타자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약 40분 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떠난 장 대표는 2시간 50분 뒤 이글거리는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과천으로 달려갔습니다. 서울시 선관위와 중앙선관위를 오가던 장 대표는 서울 송파구 잠실7동의 2투표소 앞에서 날을 지새웠습니다.
반면 선거 다음 날인 4일 열린 의원총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장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거취 문제도 덩달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날인 5일 장 대표가 꺼낸 첫마디는 '재선거'. 7일엔 사전투표 폐지까지 요구했습니다.
재선거를 실시하자. 사전투표를 폐지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내놓은 극약처방입니다. 서울이 아닌 전 지역에 대한 재선거까지 주장하며 이번 지방선거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선거 행정의 부실이 곧 조직적 부정선거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확한 시스템적 부정의 증거도 없이 전면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부터 외치는 것은 행정 비판의 영역을 넘어선 일입니다. 선관위의 관리 부실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개표 불복성 음모론은 엄격히 구분돼야 합니다.
재선거에 목소리 높이던 장 대표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는 정작 입을 꾹 닫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장 대표는 심혈을 기울이던 지역 대부분에서 참패했습니다. 여당이 그나마 수성한 서울시장 자리조차,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와 철저히 거리두기를 선택한 오세훈 시장의 독자적인 선거 전략이 유효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도부 책임론이 분출할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패배에 대한 책임이나 성찰은커녕, 선관위의 실책을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카드로 이용하는 모양새를 보입니다. 참정권 수호를 위해 올림픽공원으로 나선 청년들이 누군가의 정치적 전화위복을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됩니다. 장 대표도 한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심은 불신의 씨앗이 언젠가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