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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전자에 팔았습니다"
입력 : 2026-05-29 오후 3:53:03
요즘 개인 투자자들 사이 안부 인사는 달라졌습니다. "밥 먹었어?"보다 먼저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너 삼성전자 있어?"
 
최근 국내 증시 분위기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일 급등하며 시장을 주도하자 투자자들의 관심도 반도체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단체 채팅방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에서도 결국 대화는 삼성전자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괜히 웃게 됩니다. 삼성전자를 5만5000원대에 정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가는 몇 달째 답답했고 시장에서는 "반도체 사이클 끝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안 오를 거면 적금이나 넣자." 삼성전자를 팔고 은행 특판 금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때 제 관심사는 반도체가 아니라 예금 금리였습니다. "연 3% 넘네.", "우대금리까지 받으면 괜찮네.", "역시 사람은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그렇게 저는 스스로를 굉장히 현명한 투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꼭 사람이 만족하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움직입니다. 삼성전자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오르고, 이틀 오르고, 신고가를 경신하고, 목표주가가 올라가고, 증권사 리포트가 쏟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적금은 더 이상 적금이 아니었습니다.
 
비교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한 달 동안 이자를 줍니다. 삼성전자는 하루 만에 그 이자를 벌어버렸습니다. 휴대폰에는 '이자가 지급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뜨는데 뉴스에서는 '삼성전자 신고가' 속보가 떴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저축이 아니라 정신 수련이라는 것을.
 
사실 요즘 시장을 보면 저 같은 투자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팔아서 괴롭고, 누군가는 무서워서 못 사서 괴롭고, 누군가는 뒤늦게 들어갔다가 변동성에 흔들립니다. 지수는 오르는데 내 계좌는 그대로인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투자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시장은 반도체 중심의 쏠림 현상이 극단적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를 끌어올리는 동안 다른 종목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나만 삼성전자 없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실적이나 가치만이 아닙니다. 포모(FOMO·소외 공포) 심리도 함께 움직입니다. 주변에서 수익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투자자들은 점점 조급해집니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커지고, 결국 냉정한 판단보다 분위기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늘 비슷했습니다.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기회가 나타났고, 모두가 안심하기 시작한 순간 변동성은 커졌습니다. 최근처럼 반도체 쏠림과 지정학적 리스크, 고환율·고물가·고유가가 동시에 이어지는 시장일수록 투자 심리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삼성전자를 못 산 게 아니라, 삼성전자를 끝까지 들고 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라고.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건 좋은 종목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남의 수익률을 견디는 일입니다.
 
지금 시장에는 "얼마를 벌었느냐"보다 "왜 나는 그 종목이 없느냐"는 감정이 더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계좌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순간, 투자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지금 시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하락장이 아니라 조급함인지도 모릅니다.
 
(사진=ChatGPT)
김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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