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소통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오해가 쌓여서, 각자의 생각을 알지 못해서 관계가 틀어진다고 믿습니다. 즉 불완전한 소통 때문에 일들이 생긴다고 생각하죠.
지난 주말 영화 <군체>를 보고 난 뒤에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군체>는 도심에서 감염이 퍼지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룹니다. 감염된 존재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행동을 하게 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뇌가 직접 연결돼 완벽한 집단지성을 구현해 냅니다. 오해도, 침묵도, 해석의 차이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얼핏 보면 완벽해 보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세계.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설득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집단. '완벽한 소통'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곧 다른 공포가 됩니다. 하나의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개미들이 길을 잃고 서로의 페로몬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앤트밀'처럼, 완벽하게 연결된 집단은 잘못된 신호 앞에서 더 빠르게 무너집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조금씩 군체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연결시대라는 말처럼 메신저와 SNS, 실시간 댓글과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습니다. 누군가의 감정은 순식간에 집단의 분위기가 되고, 하나의 주장은 곧바로 여론이 됩니다.
문제는 빠른 연결이 꼭 좋은 판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틀린 정보도 빠르게 퍼지고, 분노도 빠르게 번집니다. 반대로 의심이나 생각해 볼 시간은 점점 짧아집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그 정보의 맞고 틀림보다 남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 안심하기도 합니다.
영화 <군체>를 보고 나서 어딘가 찝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좀비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서로 완벽하게 연결된 존재들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설정 때문이었습니다. 소통의 부재가 비극을 만든다면, 의심 없는 소통도 그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불완전함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자 조금씩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의심하고, 다르게 해석해 판단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연결된 군체가 아니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는 개인으로 남을 수 있는 겁니다.
소통은 좋고 특히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완벽한 소통보다 필요한 것은 불완전하더라도 각자의 판단을 잃지 않는 일 아닐까요.